[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의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이 지역의 문화 유산들도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관문으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오스만제국이 있었던 곳이라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지진의 여파로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지역 문화유산들이 작게는 20~30%, 크게는 붕괴에 가까운 60~70% 가량의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일 현지 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제보 등을 종합해보면, 이날 현재 튀르키예·시리아 지역 5~6개 도시에서 10여 개의 세계유산 및 국가보물급 사적이 크고 작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시리아 보다 튀르키예 지역의 문화유산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가지안테프성·네카르 모스크 피해 ‘심각’
대지진의 중심부인 가지안테프 지역에서는 2000년 가량 된 가지안테프성(城)이 절반 이상 파괴되는 등 가장 큰 손괴를 입었다. 이 지역은 튀르키예 내 4개의 판 중 유라시아판을 제외하고 아나톨리아판,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 3개가 겹치는 ‘삼합점’의 위험 지대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에 있는 안타키아 구시가는 광범위한 국가유산 손실을 입었다. 이 지역 14세기 중세 건물은 뼈대만 남았고,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기왓장들이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아랍 무슬림이 전파되고 638년에 만들어진 이슬람 최고(最古) 사원인 ‘하비브 아이 네카르’ 모스크도 손상을 입었다고 현지 외신은 전한다.
로마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안타키아에서는 구시가 관광인프라 개선공사 중에 확인된 로마성벽이 세상에 빛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중해 북동 끝 꺾어진 지점에 있는 안타키아는 기원전 300년께 알렉산드리아 원정군이 도시 조성을 시작한 이후 수많은 세력들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점령하기 위해 애썼던 곳이다.
‘최초 신전’ 괴베클리테페 등 세계유산 4곳도 피해
튀르키예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 19곳 중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곳은 4곳이다.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불리는 괴베클리테페(2018년 등재), 고대 희랍인(그리스)과 아리아인(이란) 행색의 조각들이 이례적으로 섞여 세워진 넴루트 산(1987년), 로마인들이 서기 297년 축성한 디야르바키르 성 및 헤브젤 정원(2015년), 말라티아 주에 있는 아르슬란테페 고고학 유적지(2021년) 등이 부분 파손을 입을 것으로 전해진다.
괴베클리테페는 장엄한 신전 구조 안에 ‘영국의 고인돌’인 스톤헨지를 닮은 구조물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신전을 만든 후손들이 영국에 건너가 스톤헨지를 만들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돌궐(투르크)·흉노(훈)·말갈(마자르)·부여(부리야트) 등 동북아시아 상고사(上古史)의 고인돌 문화가 스페인, 튀르키예, 헝가리, 핀란드, 조지아 등지로 서진(西進)하면서 일부 변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행히 지진 피해 지역에서 벗어난 이스탄불, 부르사, 하투사, 트로이, 에베소, 괴레메, 카파토키아, 파묵칼레 등에 소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15개는 건재하다.
튀르키예 문화유산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진에 따라 휴관하는 역사문화박물관은 튀르키예 남동부에 위치한 14곳이다. 아다나, 아디야만, 디야르바키르, 가지안테프, 하타이, 카라만마라스, 엘비스탄 시립, 킬리스, 말라트야, 오스마니예, 샨리우르파, 카이세리, 마르딘, 메르신박물관 등이다.
일찍이 발달한 ‘청동기 문화’·전략적 요충지 역할로 사적 많아
대지진의 중심부인 가지안테프주(州)는 수천 년전부터 구리 매장량이 많았다. 덕분에 이 근방인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니키아, 아나톨리아 일대에서는 청동기 문화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조기에 발달했다. 지중해 동부 에게해 연안의 미노스 상인들은 이 지역의 구리를 이집트, 카르타고 등 북아프리카 지역에 내다 파는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가지안테프는 3개의 지진판이 겹치는 ‘위험지역’이지만, 광업과 상업이 함께 발달해 거주 인구가 많았다. 또 지중해까지 불과 13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무역을 하기도 좋았다. 덕분에 이 지역의 무역 기지 역할을 하면서 부를 축적, 산꼭대기에도 튼튼한 성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가지안테프성은 2000년 가량 건재하며 현존하는 유라시아의 가장 오래된 성으로 평가받는다. 튀르키예는 이 성을 국가 차원에서 중시하던 보물급 사적으로 보호해 모범적인 문화유산 보존 사례로 평가 받았지만, 이번 지진으로 그 명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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