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서울대 정시 모집요강’ 들여다보니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57) 변호사가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날 이를 수용했다.
정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물러난 이유는 아들 정모(22) 씨의 ‘학교폭력 논란’ 때문이다. 정씨가 서울대에 재학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폭에 연루된 정씨가 어떻게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온·오프라인에서 커지고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입학 전형에 학폭 여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아들이 수시가 아닌 정시모집 전형에 응시,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들(정씨)은 서울대에 정시 전형으로 합격했다. 강제전학을 갔기 때문에 (학교폭력 결과를 반영하는) 수시로 대학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정순신 “정시로 합격, 수시로는 못 갔다”…당시 수능 100% 반영
정씨의 서울대 입학에 대한 궁금증은 정 변호사의 설명대로 당시 서울대의 모집 요강을 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26일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2020학년도 대학 신입학생 정시모집(‘가’군) 안내’를 보면 ‘전형요소 및 배점’에 대해 사범대 체육교육과(수능 80%+실기 20%)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모집단위는 ‘수능 10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적시돼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만 입학생을 뽑았다는 의미다.
다만 정씨의 최종 출신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제출했을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해서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 네티즌의 지적이다. 정 변호사가 한겨레에 밝혔던 ‘수시 전형에 응시하지 못 했던 이유’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에는 ‘전형요소별 평가방법’ 중 ‘교과외영역’에 대해 별도 항목을 통해 학내·외 징계의 경우 징계 여부 및 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서류를 요청할 수 있고, 감점 요소로 활용될 수 있다고도 적혀 있다.
그러나 서울대가 정씨의 강제전학 처분을 감점 요소로 반영했는지, 반영했다면 그 비율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활용할 수 있다’는 표현 때문에 실제 감점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네티즌의 추정도 나온다. 다만, 반영됐더라도 수능 점수가 합격 커트라인보다 높았다면 대입 당락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입시전문가는 “당연히 제출된 학생부에 정씨의 징계 사실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집 요강을 보니 (수능 점수에서) 1점만 감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정씨의) 당락에 영향을 미쳤을지 여부는 당시 해당 모집단위 지원자들의 전형 결과를 봐야만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부 속 ‘강제전학’, 정말 반영됐나’ 의구심 속 “1점만 감점 추정”
2017년 강원 지역 한 유명 자립형사립고에 다니던 정씨는 기숙사의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동급생에게 8달 동안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2018년 3월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측은 ‘전학 처분이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지만, 1·2심과 대법원 모두 “학교의 조치가 부당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는 2019년 2월 전학 조치됐고, 이듬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정 변호사는 ▷대전지검 홍성지청장(2017년 8월~2018년 7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2018년 7월~2019년 8월) ▷창원지검 차장검사(2019년 8월~2020년 2월)로 있었다. 현직 검사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검찰 출신인 정 변호사는 26일부터 국수본부장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정 변호사는 25일 입장문을 통해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수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국수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 문제로 송구하고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 가족 모두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 않아 국수본부장 공모 지원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사의를 전했다. 정 변호사의 지원 철회로 전국 3만 수사경찰을 총괄하는 국수본부장직은 당분간 공석으로 남게 됐다. 전임 남구준 본부장의 임기는 25일 밤 12시까지였다.
정순신, ‘지원철회’ 방식으로 사의…‘인사검증 부실 논란’ 증폭될듯
그러나 인사검증 부실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과 지역위원회 을지로위원장 리더십 워크숍에 참석한 뒤 취재진에게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학교폭력 관련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하게 하기 위해 검사 출신 법조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며 정 변호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자녀 학교폭력 사건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정 변호사를 국수본부장에 추천한 윤희근 경찰청장에도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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