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타임셸터’
英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
최종후보 천명관의 ‘고래’는 좌절
영국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영예는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55)에게 돌아갔다. 최종후보 6편에 포함돼 기대감을 모았던 천명관의 ‘고래’는 아쉽게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다.
부커상심사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2023 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으로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Time Shelter)를 호명했다.
‘타임 셸터’는 ‘가우스틴’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스위스 취리히에 설립한 알츠하이머 클리닉에 대한 이야기다. 이 클리닉의 특징은 각 층을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과거를 10년 단위로 세밀하게 재현해 이들에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는 세계 곳곳을 떠돌며 가우스틴이 클리닉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셔츠 단추, 향수, 가구 등 20세기 물건들을 수집한다.
이후 치매 환자들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몰려든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고 싶어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것. 덕분에 이 클리닉은 알츠하이머 치료소 이상의 의미를 갖게된다. 시간의 도피처를 의미하는 제목 ‘타임 셸터’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 소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영광스러운 과거에만 집착하는 유럽의 암울한 세태를 경쾌하면서도 재밌게 그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저자는 부커상조직위와 사전 인터뷰에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가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라고 밝힌 바 있다.
고스포디노프는 “미국과 유럽에서 ‘위대한 과거’를 들먹이고 포퓰리즘으로 세계가 해체되는 상황이 나를 자극했는데, 브렉시트는 또 다른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어 “나는 ‘밝은 미래’를 내세웠던 (공산주의) 체제를 겪었는데, 이제 판이 바뀌어 포퓰리스트들이 ‘밝은 과거’를 팔고 있다”며 “나는 그런 것들이 아무 실체가 없다는 걸 잘 안다”고 덧붙였다.
고스포디노프는 불가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현재 유럽에서 인정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타임 셸터’를 영어로 옮긴 미국인 번역가 앤젤라 로델도 작가 고스포디노프와 함께 올해 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이날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한 현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심오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부커상의 상금은 5만 파운드(한화 8200만원)로, 작가와 번역가가 절반씩 나눠 갖는다. 그만큼 작품을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의 작업과 노고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국 작가로는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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