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내한

오는 26~27일ㆍLG아트센터 서울

삶의 취약성 담은 ‘카이츠’, ‘사바’ 공연

 

20개국 38명 무용수 소속된 다국적 단체

다양성ㆍ개인의 창의성 중시가 방향성

“빅히트 협업 제안, 코로나로 무산…

현대무용과 대중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

방탄소년단 지민
방탄소년단 지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맨발의 일곱 소년이 흑조가 됐다. 검은 의상을 입고 나무 바닥의 무대 위에 사선으로 정렬한 방탄소년단(BTS). 일사불란하게 이어진 안무를 마치면, 솔로 무용수 지민이 하늘을 날아오른다. 오차없는 ‘칼군무’가 현대무용과 만난 ‘블랙스완’ 뮤직비디오.

2020년 발매한 방탄소년단의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7’에 수록된 이 곡은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인 마사 그레이엄이 남긴 명언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났다.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무용수가 춤을 그만둘 때다. 그리고 이 죽음은 훨씬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당시 빅히트 뮤직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탄생한 흑조를 연상시키는 안무를 담았다”고 했다. ‘블랙스완’은 슬로베니아 현대무용단체 ‘엠엔 댄스 컴퍼니(MN Dance Company)’와의 협업으로 ‘아트 필름’을 선보이기도 했다. K-팝을 넘어 순수예술로 영역을 확장한 프로젝트였다.

탁월한 안목과 인사이트로 다양한 예술 분야와 접점을 만드는 빅히트 뮤직이 러브콜을 보낸 무용단체가 또 있다. 스웨덴의 항구 도시 예테보리에 자리한 ‘예테보이 오페라 댄스컴퍼니’.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현대무용단으로 꼽히는 이들이 마침내 한국을 찾았다.

“굉장히 유명한 K-팝 기획사가 뮤직비디오를 만들자고 제안해 당시 마케팅 담당자가 엄청나게 흥분했었죠. 코로나로 인해 흐지부지 됐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굉장히 기대됩니다.”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카트린 할 예술감독, 무용수 발레리아 쿠즈미카, 이치노세 히로키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카트린 할 예술감독, 무용수 발레리아 쿠즈미카, 이치노세 히로키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한국에서의 첫 내한 공연(5월 26~27일, LG아트센터 서울)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카트린 할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예술감독은 빅히트뮤직의 협업 제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가 들고 온 두 작품은 묘하게도 방탄소년단의 ‘블랙스완’의 예술적 감성과도 닮았다. 벨기에 출신의 스타 안무가 다미안 질레의 ‘카이츠(Kites·연)’와 이스라엘 안무가 샤롱 에얄의 ‘사바’(SAABA)다. 할 예술감독은 두 작품에 대해 “삶의 위태로움과 취약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예테보리에서 세계 초연한 ’카이츠‘는 34도 기울어진 경사로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할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신체적으로 많은 것이 요구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바’는 “삶의 취약성을 강렬한 신체성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이다. 특히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집단성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하와이 출신 무용수 이치노세 히로키는 “두 작품 모두 서사 중심의 작품이 아니라, 감정, 느낌에 중심을 둔 작품”이라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경험이나 느낌을 얻어가고 예전에 경험했던 무언가를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과 시간을 주는 작품이다. 이런 반추의 경험을 통해 관객이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라트비아 출신 무용수 발레리아 쿠즈미카는 “‘카이츠’를 통해 제한된 상황 속에서 자유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신체성이 도드라지는 이 공연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감동을 받고 감정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두 작품엔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의 독특한 개성과 지향점이 담겼다. 이 무용단엔 전 세계 20개국에서 온 38명의 다국적 무용수들이 소속돼있다.

할 감독은 “다국적성은 무용단이 추구하는 다양성에 기여한다”며 “각각의 무용수가 가진 문화적인 배경과 느낌을 작품에 가져오며, 집단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는 매작품 안무가와 협업하나, 무용수들이 주어진 안무만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치노세 히로키는 “예테보리에선 무용수들의 창의성을 키워나가고 독려한다”며 “모든 공연이 창의적인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안무들이 가진 언어가 무용수들의 몸에 자유롭게 입혀지고, 무용수들의 창의성이 예테보리의 공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모든 무용수가 공동 창작자로 매 공연에 예술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면서 팀워크 정신을 독려하고, 팀정신을 이해하며 예테보리가 가진 큰 그림과 방향성, 예술적 목표를 가져가도록 하고 있죠.” (카트린 할)

개인의 창의성과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만큼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의 무용수 선발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다. 단원 선밥ㄹ 공고를 낼 때마다 무려 1200~1300명이 지원, 이 중 70~80명에게 오디션 참여 기회가 주어진다. 최종 선발되는 단원은 고작 2~3명이다. 할 감독은 “엄격한 선발 기준을 갖고 진행하되 무용수의 창의성과 인간성을 보는 것에는 본능에 의지한다”며 “무용수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두 가지는 겸손과 열정이다. 무용수가 본인의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마법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내년엔 예테보리의 첫 한국인 단원이 될 무용수 김다영이 입단한다.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예테보리가 추구하는 다양성은 대중문화로도 영역을 확장한다. K-팝과의 협업 구상은 물론 영화와의 접점도 만들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아니마’는 이 단체의 작품 ‘스키드’를 다루고 있다.

할 감독은 “새롭게 떠오르는 예술 형태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는다”며 “톰 요크, 비욘세, 마돈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도 현대무용계에 협업을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을 현대무용에 녹이는 형태를 통해 경계를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히로키는 K-팝 오디션 경험도 있을 만큼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는 “노래의 장벽을 넘지 못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며 “ K-팝은 얼마든지 현대무용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우리와 협업한 안무가 호페쉬 쉑터의 작품 중에 K-팝 느낌을 담은 공연이 있었어요. 당시 안무가와 협업에 K-팝 동작을 만들었는데, 그 때 K-팝 가수로의 못다 이룬 꿈과 한을 풀기도 했어요. (웃음) 예테보리는 현대무용과 대중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무용수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의 교류예요. 이런 측면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 것에 큰 기대를 갖고 있어요. 관객과의 교류로 동작의 본질을 깊이 전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의지력과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세 히로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