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김태호, 당 요구 즉각 수용
조해진, 설 연휴 이후 입장 밝힐듯
‘낙동강벨트 탈환’ 명분-시기도 영향
“승산 충분”…비주류 솎아내기 비판도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부산의 서병수(부산진갑) 의원님께 민주당의 전재수 의원이 있는 북·강서갑으로 출마해주십사하는, 여지껏 소신있게 의정활동을 해 오셨고 당이 힘들 때도 늘 당을 지켜온 분이시기 때문에, 북·강서갑으로 출마해주십사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 경남 지역에서는 김태호(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의원님께 김두관 의원이 있는 양산을 지역에 출마해주십사 부탁을 드린 상태다.” (2월 6일)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님께 김해갑이나 김해을로 가셔서 당을 위해서 헌신해 달라는 말씀을 드려봤다.” (2월 7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부산과 경남 지역의 다선 중진들에게 22대 총선 험지 출마를 공개 요청했다. 중진들의 험지 출마는 총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이번엔 그 방식을 놓고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왔다. 물밑 제안 이후 중진의 결단을 기다리는 통상적인 순서와 달리, 장동혁 사무총장이 공개적으로 이름과 지역구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첫 공개 요청이 나온 직후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공개 제안을 받은 중진들은) 사실상 거부할 수도, 마냥 침묵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라며 “경험이 적지 않은 만큼 빠르게 입장정리를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실제 서병수 의원은 하루, 김태호 의원은 이틀 만에 지도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렸다. 조해진 의원은 설 연휴 이후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이번엔 달랐다…‘빠른 결단’ 내린 중진들
서 의원은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선거, 이번에도 저 서병수가 가장 앞에 서겠다”며 “어떤 희생,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도 8일 기자회견에서 “당이 처해있는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기에 외면할 수가 없었다”며 “당을 위해 제가 더 쓸모있게 쓰인다면,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또 가겠다”고 당의 요청을 수용했다.
이번 상황은 지난해 10월 당 혁신위가 ‘중진 희생론’을 꺼내들며 압박할 당시 침묵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 배경엔 ▷이례적인 지도부 공개 요청 ▷6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총선 ▷낙동강 벨트 탈환이 명분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역의원 평가 및 공천 실무자인 장 사무총장의 공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사무총장이 공개 요청 이전 물밑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공개 요청이 곧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혁신위 활동 당시는 총선까지 약 5개월 남았던 만큼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반응이 나왔고, 요청 주체였던 인요한 위원장도 정치권 밖 인사였던 만큼 힘이 실리지 않았다.
‘낙동강 벨트 탈환’도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여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3년차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사실상 ‘식물 정부’가 될 것이란 우려가 짙었다. 국민의힘으로선 지난 총선에서 대패한 수도권과 충청권, 마지막으로 부산·울산·경남(PK)에서 최대한 추가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상 호남에서 이정현 전 의원을 제외하고 의석 확보가 여의치 않고, 정부 심판론이 작용하는 중원(수도권·충청권) 역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며 “PK에서 민주당의 의석을 한 자리라도 더 빼앗아 오는 게 현실적 승부수란 공감대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마 거절했다면 김태호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라며 “생각의 중심을 나에서 당과 더 큰 의미로 옮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기는 공천이냐, 비주류 솎아내기냐
중진들의 험지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 년에 걸쳐 인지도와 경험을 쌓은 중진들을 주요 선거를 앞두고 ‘선당후사’를 요구하는 물밑 제안을 받아 왔다. 서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잠룡’으로 주목받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상대로 자객 공천돼 승리했다. 김 의원 역시 과거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던 전국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2011년 4월 재보선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P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지도부의 차출 요청을 ‘이기는 공천’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서 의원은 부산시장을 지냈고, 김 의원은 과거 국무총리 후보에 오른 데다 경남도지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그만한 역량이 있으신 분들”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모범을 보여주길 바라는 차원에서 (험지 출마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남의 한 의원도 “이름값을 하라는 것 아니냐”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주류 솎아내기’라는 시각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험지로 나서게 된 이들이 중진 중에서도 ‘쓴소리’를 담당하거나, 친윤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은 인물들이란 평가를 받아서다. 서 의원은 지난해 말 혁신위가 ‘반쪽짜리 성공’이란 평가 속에 활동을 종료하자 페이스북을 통해 “혁신위 실패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는 전조”라며 당시 지도부를 공개 비판했다. 조 의원은 과거 유승민계로 분류됐다.
대통령실 또는 검사 출신 인사들이 국민의힘 지지도가 높은 ‘양지’에 출마한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부추기는 배경이다. 부산에서는 검사 출신의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3선 하태경 의원의 서울 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해운대갑에 공천을 신청했다. 서 의원의 지역구에는 박성훈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이 출마한다.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도 외교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진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을에 출사표를 던졌고, 논란이 되자 “공천과 관련된 어떠한 당의 결정도 존중하고 조건 없이 따를 것”이란 입장을 최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