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된 1947년 4월28일 노르웨이 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인 토르 헤위에르달(Thor Heyerdahl)과 동료 5명은 뗏목을 타고 페루를 출발한다. 태평양 뗏목 횡단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이 뗏목은 고대 폴리네시아인 등이 태평양 항해때 쓰던 것을 재연했다.
헤위에르달이 항해에 나서게 된 이유는 남미 태평양연안지역 원주민과 동남아시아 및 폴리네시아 주민 중 상당수가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들이 어떻게 태평양을 횡단해 이주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리네시아 파투히바에서 문화인류학 연구활동을 벌일 때 얻은 가설을 입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헌으로는 1500여년전 페루-폴리네시아-필리핀 지역을 왕래한 것으로 드러났고, 구전으로는 석기시대에 이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거센 풍랑과 상어의 공격 등 악조건을 감안할 때, 뗏목만으로 항해했다고 믿기 힘들었기에,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실험 항해를 결심했다.
오동나무 일종으로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발사(balsa)나무를 기반으로 하고 그 위해 대나무로 갑판과 선실 형태를 만들었다. 길이 13.7m, 폭 5.5m. 헤위에르달은 이 뗏목을 고대 잉카제국 태양신의 이름을 따 콘티키(Kon-Tiki)호라고 불렀다.
항해에만 성공한다면 폴리네시아 종족신이 남미의 태양신의 이름과 같은 이유는 물론 태평양 횡단보다 손쉬운 대서양 항해 즉, 고대 이집트인들과 남아메리카의 교류설도 입증되는 것이다. 유럽의 학계는 “미개한 남반구인들이 유럽인들도 10세기 이후에나 이뤄낸 항해술을 고대에 발휘했을 리가 없다”면서 헤위에르달을 몽상가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고대 어부의 복색으로 무장한 탐험대의 콘티키호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7964km를 항해한 끝에 100일만인 그해 8월 7일 폴리네시아 투아모투해변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헤위에르달의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2월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에 후보에 올랐다. 수상의 영예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최근 미국 뉴욕 맨하탄 극장가에서 상영된 것을 계기로 뉴욕타임스, 보스턴헤럴드, 마이애미헤럴드, 토론토썬, 허핑턴포스트 등이 잇따라 보도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콘티키 이야기는 특정종족이 잘난 척 해도 인류의 능력과 상상력의 차이는 별로 없음을 말해준다. 오만과 편견은 세상을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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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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