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의 표정없는 검은 눈동자에 빠지면 비극의 주문이 걸렸다. 기어이 보는 내내 울었다. 드라마(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끝난 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그렇게 못나보일 수가 없었다. 서정성과 삶을 향한 갈급함으로 무장한 이 드라마는 사실 ‘외모지상주의’ 조장자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서있는 것만으로도 우월한 비주얼과 조화로운 화학반응을 일으켰던 조인성 송혜교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완벽한 헤피엔딩으로다.
일본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가 의기투합했고, ‘이토록 아름다운 오누이는 없었다’는 조인성 송혜교가 브라운관을 메우며 지난 2월13일 시청자와 만났다.
돈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거짓된 만남을 시작한 것은 ‘가짜 오수(조인성)’가 목숨을 담보로 한 78억원을 갖기 위한 수단이었다. 대상은 눈 먼 동생이자 국내 굴지의 PR그룹 상속녀인 오영(송혜교). 너무도 살고 싶었던 오수는 과거의 굴레에 머물며 하루라도 살아갈 날을 줄이고 싶어한 오영에게 찾아간다. 그들은 거기에서 사랑을 본다. 삶을 향한 사랑, 인간을 향한 사랑, 돈보다 더 귀한 사랑이었다. 그로 인해 얻게 된 화해와 용서였다.
멜로로 중무장한 드라마였으면서도 가장 대비되는 두 속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다 보니 개개의 인간이 가지는 본질을 둘러싼 감정연기가 중요했다. 그 중심에는 송혜교를 빼놓을 수 없다.
얼핏 차갑고 오만한 듯 보이는 눈동자는 사실 비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오영을 홀로 남겨둔 채 오빠만을 데리고 떠난 엄마. 이별 뒤 오영의 날들은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담은 영상을 반복해서 본다. 귀로 듣고 기억으로 보는 날들이었다. 남겨진 오영은 자신의 모든 날들을 영상으로 녹화해 이야기했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함께 할 수 없기에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주위엔 온통 오영의 돈을 보고 모여든 사람(왕비서, 친구 미라, 약혼자 이명호)뿐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날들에 오빠가 돌아왔는데 또 돈이란다.
오영을 연기한 송혜교는 이 드라마를 통해 놀랍도록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줬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에는 몰입에 방해돼 현장에서는 밥도 먹지 않고 다른 사람과는 대화도 하지 않았을 정도다.
송혜교 조인성을 비롯한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뛰어났다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 섬세한 연기들은 고스란히 예능 안으로 들어와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SNL코리아(tvN)’에서는 앞을 못보는 오영이 오수의 몸을 만져보는 장면을 신동엽 이영자 19금 버전으로 패러디했고, ‘런닝맨(SBS)’에서는 ‘그 겨울, 태풍이 분다’는 부제로 드라마를 재해석했다. 송혜교는 특히 이 같은 장면의 재해석에 “(‘SNL 코리아’에서) 신동엽, 이영자 씨가 패러디한걸 봤다”면서 “근데 그다음부터 조인성 씨 장면을 봐도 감정 몰입이 안 된다. 원래는 약간 슬픈 장면인데 그 다음부터 슬프지 않았다”며 재미있어 했다. 이 역시 드라마 인기의 척도였다.
바람이 불던 겨울이 지나자 드라마에는 벚꽃이 흩날렸다. 오수와 오영은 가짜 오누이가 아닌 연인으로 다시 만났고, 오영은 오수의 얼굴을 눈으로도 만져볼 수 있게 됐다. 긴 달리기를 끝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15.8%(AGB닐슨 집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남겼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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