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시티팀 = 김효태 칼럼니스트]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사퇴한지 보름 가까이 지났다. 사퇴 시점이 재보궐선거 기간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외유 중이었고 귀국 후에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영향으로 인해 후임 총리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정국 흐름이 공무원연금 건으로 쏠리는 바람에 이래저래 후임 총리 인준에 관심이 멀었던 기간이었다.총리 인준이야 철저하게 대통령 의중에 달렸지만, 나는 후임 총리가 국민통합형 총리이기를 희망한다. 즉, 야권 인사나 야권 성향 인사를 전격적으로 총리에 인준하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는 굳이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총리 인준에 따르는 또 다른 국론분열과 시행착오를 줄이며, 서민 생활과 경제를 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서인 정권 하에서 남인 출신 영의정 추대로 민심안정을 가져온 인조]조선시대 때 있었던 비슷한 성공 사례를 들어보자. 광해군 정권 말기는 소수당파인 대북(당파)의 집권 시기였다. 사림 세력은 동서붕당이 되면서 집권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북인이 또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나뉘었다. 소수인 집권 대북(세력)은 서인 중심에 범 동인(남인+소북)세력까지 연합된 쿠데타(인조반정)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서인+인조 정부가 들어섰다.그런데, 당시 민심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 백성 입장에서 보면, 궁궐 안에 피바람은 늘 있었던 일이다. 정권을 이놈이 잡으나 저놈이 잡으나 백성들 생활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쿠데타로 왕이 바뀌었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쉽게 설명하면, 멀쩡하던 최규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고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러니 인조반정 당시에 민심 역시 매우 불안정 했을 것이다.그만큼 인조반정은 명분이 충분치 않았다. 광해군 역시 그리 잘나거나 훌륭한 임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정을 당할 만큼 못났거나 엄청난 폭군도 아니었다.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폐모 사건도 일반 백성에게는 궁궐 내 암투 정도로만 느껴질 이야기였다. 그러나 백성들도 하루아침에 왕이 바뀐 것만큼은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당황한 서인정권과 인조는,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남인 쪽 사람인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앉혔고 그제서야 민심이 안정됐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영의정 자리를 국민통합형 인사로 인준한 것이다.[야당에게 총리 후보 추천권을 주는 것도 방법]역사 속에 좋은 사례가 보여주듯이 박근혜 정부도 국민통합형 총리를 인준해서,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고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팽창에 맞서는 효과적인 외교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일본 장기불황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야당의 적극적 협조가 필수인데, 국민통합형 총리를 인준하면 청문회 통과도 수월해지고 야당의 국정 협조도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성완종 리스트가 불러온 현 정부의 도덕성문제와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한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그런 만큼 이번 총리 인준을 야권에게 개방해 국민통합형 인사로 할 것을 제안한다. 과거 참여정부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국민통합은 정권을 거머쥔 쪽에서 폭넓은 수용과 양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청와대의 폐쇄적 인사관리 시스템에 의한 시행착오로 인해서, 총리 인준 때마다 청문회는 해보지도 못하고 낙마한 사람만 몇 명인가? 말이 나온 김에 총리 후보 추천을 야당에게 일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물론 아무리 야권인사라 할지라도 본인과 아들의 병역문제가 깨끗하며, 일가의 편법/불법 재산증식 의혹도 없어야 하고, 전관예우 특혜도 없었어야 하며, 부동산 투기도 없어야 하며, 기업인에게서 정치자금도 받지 않았고, 조상 중에 친일행각이 있으면 아니 되며, 역사관도 올바르고, 골프 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선거 기획과 실행' 저자 김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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