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노리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인종차별적 발언과 잦은 말실수에도 ‘트럼프 신드롬’으로 대선 가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서베이 유에스에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민주)과 양자 대결에서 45% 대 40%(지지율)로 앞섰다. ‘공화당 후보 지명 가능성’에서도 30%의 지지율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20%)를 누르고 당내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배경에는 백인의 위기감이 깊게 깔려 있다. 소수 인종의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서 2010년 백인 인구 점유율은 72.4%까지 떨어졌다. 2043년에는 백인이 소수 인종으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가 출마 선언 연설에서 불법 이민을 이슈화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잘 읽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제(birthright citizenship)를 비판하고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는 것이 표심을 얻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슈를 선점하는 정치적 감각도 한몫하고 있다. ‘멕시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높은 담을 쌓겠다는 주장은 불만 계층의 마음을 끄는 매력을 발휘한다.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는 또 다른 예다. 트럼프는 “중국은 우리를 쓰러뜨리려 한다. 더 늦기 전에 결별해야 한다”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워싱턴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트럼프의 장광설은 신선한 대안으로 다가선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연방정부 폐쇄, 국가채무 위기 등으로 합의정치가 실종되고 국민의 소외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포퓰리즘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미국 NBC의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 시청자가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잘 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진 방송국의 입장에서 트럼프는 높은 시청률을 보장한다. 돌출 발언에도 미디어가 그에 대한 취재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트럼프=시청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브랜드 정치’에도 능숙하다. 유권자는 후보의 진정성을 갈망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끊임없이 자신을 정직한 후보로 부각시킨다. 힐러리 클린턴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대조된다. 클린턴은 최근 퀴니팩 대학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38%에게만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트럼프주의(Trumpism)’를 규정하는 정치 이념은 무엇인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정부 자체가 문제”라며 ‘작은 정부론’을 역설했다. 트럼프는 정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도층이 유능하지 못해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은 공직자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현상’은 얼마나 지속될까. 보수 성향 블로그 ‘레드스테이트’를 운영하는 에릭 에릭슨은 “공화당이 이뤄질 수 없는 정치적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등장했다”며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됐을 경우 당선 가능성은 있을까. 백인 유권자의 비중이 2012년 대비 2% 감소한 반면 히스패닉 유권자 비중은 전체의 10%를 넘어선 상황이다. 2012년 대선에서 미트 롬니(공화)는 59%의 ‘백인 표’를 얻었지만 히스패닉과 아시안에게 각각 71%, 73%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민주)에게 참패했다.
트럼프가 롬니와 동일한 17%의 ‘소수 인종 표’를 얻고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백인 표’의 65%를 확보해야 한다. 박빙의 승부가 점쳐지는 내년 대선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트럼프 현상’은 왜곡된 미국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편의 리얼리티 쇼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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