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조직 형태 ‘맞춤형 범죄’ 진화 수법 교묘화…피해자 속수무책
몇 년째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온 취업준비생 박채령(29ㆍ가명) 씨는 어느 날 유명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재택근무자 채용광고 글을 보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박씨는 업체의 요구에 따라 근로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기본 신상정보를 이메일로 제출했다. 회사의 사업자등록번호와 주소, 이름을 확인한 박씨는 안심하고 곧바로 근무를 시작했다. 회사는 사이버상에 구축한 업무관리시스템으로 박씨의 재택근무 성과를 확인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박씨는 그간 계좌에 모아둔 돈 수천만원이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됐다. 범인은 바로 회사가 만든 업무관리시스템이었다. 이 회사는 사실 금융기관 협력업체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조직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공인인증서를 업무관리시스템에 등록하라고 한 다음 개인정보를 몰래 빼갔다. 이후 통장 없이 출금이 가능한 모바일 현금카드를 발급받고 피해자 명의로 대출신청을 한 뒤 현금인출기에서 손쉽게 돈을 인출했다.
이처럼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은 점점 더 교묘해진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울리고 있다. 무작위로 범죄대상을 골라 전화로 ‘겁’을 주던 방식에서 한층 더 지능화된 것이다.
보이스피싱 관련 각종 보도와 교육으로 낯선 전화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특정 계층을 집중공략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특히 박씨처럼 취직이 절박한 취업준비생과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주요 ‘먹잇감’으로 삼았다. 불법 유출된 구직자 명단과 대출 신청자 목록은 이들 조직의 범행을 더 수월하게 해줬다.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이스피싱 범죄로 발생한 피해액은 총 2596억원에 달한다. 발생건수도 2013년 4765건에서 지난해 7239건으로 51.9% 증가했다.
하지만 지금의 단속방식으로 보이스피싱을 근본적으로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총책임자의 신분이 아래 조직원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해킹책’과 ‘콜센터(연락책)’, ‘현금인출책’, ‘대포통장 관리책’ 등이 ‘총책’ 아래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다.
반면, 경찰은 단순 인출책 위주로 현장을 단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속도 범죄가 발생하고 나서야 이뤄지는 데다 일회성에 그쳐 윗선에 있는 총책임자 검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합수단도 최근 윗선부터 잡아들이는 방식으로 바꾸고 집중수사에 나섰다.
김현일ㆍ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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