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Ifez = 주성종 논설위원 기자]-日교과서 도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외교정책 탓’서울광장 앞 서울도서관 외벽을 둘러보다 보면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썼다는 ‘나를 잊으셨나요?’란 문구와 함께 소녀상 사진이 있다. 늘 그곳을 지날 때면, 뜯겨진 단발머리, 주먹 쥔 손을 시린 가슴으로 마주하게 된다.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마찬가지다.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소녀의 모습으로 높이 약 130㎝의 크기로 형상화 해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연행 당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짧은 단발머리에 손을 움켜쥔 소녀가 의자에 앉은 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소녀상의 발은 땅을 밟지 않는다. 고국에 돌아왔으나 누구의 환대와 위로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고국의 땅을 딛지 못하는 불편한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예쁘게 다듬어진 단발이 아니라 뜯겨진 듯 얽힌 머리는 전쟁으로 짓밟힌 순수한 영혼의 심리상태를 표현된 것이며, 옆의 빈 의자는 생존해 계신 피해자 할머니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귀향하지 못한 소녀들을 잊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잊는 것이란 염원이 담겨있기에 절로 숙연해진다.“우호적인 한일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독도 및 교과서 문제를 일본에서 도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자” 이는 이명박 前대통령이 취임 초 발언했던 대목 중 일부다.일본 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날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국내정치 등을 감안해 볼 때, 독도를 둘러싼 마찰은 앞으로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는 예견됐던 것이 현실화됐다는 점이다.일본이 남북관계에 즉 한반도의 전쟁에 있어서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언급하면서도 정작 돌아서서는 독도영유권 주장이나 역사교과서 왜곡, 각료 신사참배 강행 등 군국주의적 습성을 답습하고 있다.우리정부의 땜질식 미온적 대처에 일각에서는 “일본이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노리고 차근차근 수위를 높이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며, 엄중한 대처와 함께 단호함으로 뿌리를 뽑아야한다. 만일 이 시점을 놓친다면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을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까지 한 몫 더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과거를 거슬러 고 김영삼 前 대통령은 일본의 망언에 대해 엄중하게 꾸짖으며 완고한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 문민정부 시절인 지난 1995년 8월15일을 맞아, 사회당 출신의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히 반성한다’고 사과했으나, 그해 10월 일본의 한 각료가 “일본이 식민지배 시절 한국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망언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격한 반응으로 꾸짖으며 입장표명을 확실히 했다.이어 한·일 외교 분쟁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고 대일성명 등을 통해 강력히 대응하는 외교 전략으로 일본에게 유리한 울릉도 기점의 200해리 경제수역을 우리에게 유리한 독도기점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국제법상으로 주장하는 등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견제했던 고 노무현 前 대통령.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한·미관계는 물론 한·일 관계, 남·북 관계 등 여러모로 냉온탕을 오가는 ‘빈정의 도가니로 오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기 후, 일본의 억지스런 ‘독도영유권 주장’과 교육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등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외교정책의 파장으로 “과연 이명박 정부가 독도 영주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실제 이명박 前“대통령은 취임 초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독도 및 교과서 문제를 일본에서 도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자”라고 발언해 반감을 사기도 했다.이러한 이 前대통령의 영토주권에 대한 모호한 입장 표명과 독도를 둘러싼 왜곡된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입장을 공식화한 것에 대해, 한·일 외교정책이 결국 수십 년 동안 독도를 탐내고 있던 일본에겐 좋은 기회로 작용했을지 모른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외교정책이 빚은 파장이 지금 이 순간 현실화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답습하기라도 하듯 현 정부의 미온적 대응은 시기적절한 표현에서 멀어 보인다.실제 정부는 지난해 12월 ‘최종적·불가역적’이라며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본정부와 그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는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일본의 진정어린 사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를 합의해 준 것은 치욕적 합의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귀향이나 동주 등의 신드롬은 한·일 양국의 합의가 ‘최종적이지도, 불가역적이지도’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더욱 화나게 한 것은 합의이후 일본 정부가 보인 태도와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다. 일본은 합의 직후 위안부를 부정하는 역공을 폈다. 아베 총리는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한국정부가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도 부인했다. 심지어 일본 자민당 소속의 한 의원은 “위안부는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지금까지도 묵묵부답 꿀 먹은 벙어리다. 무엇이 국익인지 분별력 없이 이상할 정도로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에 침묵모드로 일관해 왔다. 오죽하면 역사왜곡 문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 제기 민주화를 위해 민간변호사 모임이 나섰겠는가.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배울 사회 국정교과서에 위안부 용어와 사진이 삭제된 채 기술됐다. 이번 교과서는 지난해 말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면서 ‘불가역적 협상’논란이 일었던 이후 출판됐다고 하니, 썩소(썩은 웃음)가 절로 나온다. 이는 일본의 진정성 없고 거짓된 반격과 그것을 알면서도 진실 앞에 침묵하는 한국이 낳은 결과인 것만은 분명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 그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새둥지가 무너지면 알도 깨지기 마련이다. 한반도라는 둥지와 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