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광주=박병국ㆍ장필수 기자]“한국의 5ㆍ18은 민주화운동의 본보기죠. 한국은 ‘민주화 선배’의 나라입니다.”

지난 2007년. 버마(미얀마)민주화 단체에 소속된 한 활동가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5ㆍ18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홍콩, 대만, 타이, 인도네시아, 티베트 등 수많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의 압축적인 산업화만큼 한국의 민주화 역시 타국의 부러움을 사는, 한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산업화가 한국의 부를 알렸다면, 민주화는 한국의 품격을 드높였다. 산업화가 땀의 결실이라면, 민주화는 피로 이뤄냈다.

5ㆍ18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종료됐다. 국회 청문회, 5ㆍ18 특별법, 대법원 판결 등을 거쳤다.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 등 신군부에게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광주시민을 살해한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숭고한 희생을 인정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37년이 지난 지금, 5ㆍ18은 여전히 추모받지 못했다. 엄숙한 추모가 있어야 할 자리를 고성이 대신했다. 국가보훈처는 보수단체가 덧씌운 5ㆍ18의 색깔론을 근거로 ‘국론분열’이라 판단했다.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국민통합이 저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극우 보수단체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에 맞춰 “5ㆍ18에 북한군이 참여한 게 기정사실화”라며 올해에도 어김없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야권은 물론 여권도 국가보훈처를 비판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18일 광주 기념식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입장하지 못한 박 보훈처장은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맞받아쳤다.

그 시간, 기념식장에선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참석자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여야가 없었다. 사실상 제창이었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만 끝까지 노래를 거부했다. 기념식 후 곳곳에선 울분 섞인 고성이 터졌다.

구묘역에선 유족들이 있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은 “저쪽 행사(기념식)에 잘 안 가”라고 털어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화내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말없이 곳곳에서 묘비를 쓰다듬었다.

올해 5ㆍ18에도 열사는 추모받지 못했다. 37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은 말이 없다. 그저 이날을 지켜봤을 뿐이다. 박 보훈처장을 막으며 울분을 쏟아낸 유족들은 이내 분에 지쳤다. 20여분만에 끝난 기념식은 여전히 그들을 위한 위로가 아녔다.

2016년 후손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5ㆍ18을 역사 속으로 놓아주지 못했다. 추모를 논란으로 만든 국가보훈처의 고집, 보수단체의 맹목적인 색깔론이 빚어낸 죄스러움이다. 한국정치가 올해에도 5ㆍ18을 놓아주지 못한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