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밀레, 한국법인 설립 20주년
고급 아파트 빌트인 가전으로 명성
품질 자신 “20년 넘게 써도 끄떡 없어”
삼성·LG도 럭셔리 가전으로 밀레 추격
밀레 회장 “경쟁 환영…파이 성장 기대”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부터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잠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한남동 나인원 한남까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고급 주거단지는 모두 독일 밀레의 가전제품들로 채워졌다.
건설사들이 2000년대부터 프리미엄을 외치며 고급 아파트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밀레의 빌트인 가전도 특수를 맞았다. 소득수준이 높은 소비자들도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때 밀레의 가전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애초 우리나라는 미국·유럽과 달리 ‘빌트인 가전 불모지’였으나 밀레는 서울 시내 고급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 등을 집중 공략하며 빌트인 가전 시장을 개척했다.
삼성전자·LG전자가 버티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독일산 밀레는 어느 덧 ‘꿈의 가전’이자 ‘명품 가전’의 대명사가 됐다. 초고가 가전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올해는 밀레가 한국법인 ‘밀레코리아’를 설립한 지 20년째가 되는 해다. 밀레코리아 창립 2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독일 본사의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직접 한국을 찾았다.
마르쿠스 회장은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년 전 한국법인 설립 당시 계약서에 서명했던 만년필을 가져와 들어보였다.
그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지금도 사무실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며 한국 시장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수준 높은 안목을 지닌 한국 소비자들은 품질에 예민하고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밀레가 지향하는 가치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며 “계속 성장하는 한국 시장에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명품 가전’ 대명사…비결은 “20년 넘게 써도 끄떡 없어”
밀레의 마스터쿨 냉장고는 1390만원, 의류건조기는 4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완전 빌트인 식기세척기는 420만원, 후드를 내장한 인덕션은 690만원, 빌트인 커피머신은 590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제품이다.
철저히 고가 전략을 취한 밀레는 한국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성장해왔다. 한국인들이 비싼 밀레 제품을 주저하지 않고 구매하는 이유로 긴 수명을 꼽는다.
독일에서도 밀레의 제품은 ‘대를 이어 쓴다’고 할 만큼 수명이 길다.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한번 사면 20년 이상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이왕이면 비싼 돈을 주고 밀레의 제품을 집에 들이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밀레 식기세척기를 27년째 잘 쓰고 있다는 소비자의 일화가 소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문섭 밀레코리아 대표는 “저희가 직접 대전에 거주하는 해당 고객을 찾아가 들어보니 하루에 한두 번 식기세척기를 돌리는데 여전히 세척력이 좋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밀레 제품의 수명이 긴 이유는 개발 과정에서부터 최대 20년을 기준으로 내구성 테스트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20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20년이 지난 후에도 처음 구입했을 때와 ‘동일한 성능을 발휘하는 제품’을 목표로 한다.
식기세척기는 5600회, 드럼세탁기와 의류건조기는 각각 5000회의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생산이 종료되더라도 최대 15년 이상 부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수리 서비스도 원활하게 제공한다.
밀레는 소비자들이 가전을 쉽게 바꾸지 않고 오랜 기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삼성·LG도 럭셔리 빌트인 가전 공략…“경쟁 환영”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양대 가전업체가 버티고 있어 ‘외국산 가전의 무덤’으로 불린다. 그러나 밀레는 2005년 과감하게 한국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밀레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첫 해인 2005년 매출은 133억원이었으나 2015년에는 21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0년 만에 62% 성장했다. 2024년 매출은 468억원으로 10년 만에 다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 시내 고급 주거시설에 밀레의 빌트인 가전을 집중적으로 공급하며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데이코’와 ‘SKS(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라는 럭셔리 빌트인 가전 브랜드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가전 업계에서는 밀레가 공고히 지켜왔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르쿠스 회장은 이에 대해 “많은 경쟁사들이 점점 프리미엄 영역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저희가 그동안 지켜온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거꾸로 증명하는 것이기에 경쟁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참전으로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 시장의 파이가 커져 오히려 밀레가 더 많은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쿠스 회장은 “한국의 빌트인 가전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한국 가정에서 통합 솔루션을 선호하기 때문에 밀레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126년째 두 가문 공동 경영…다툼 없이 성장 거듭
1899년 독일 하노버 북부 귀테슬로우에 설립된 밀레는 두 가문이 126년째 분쟁 없이 공동 경영이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동 창업자인 친칸 가문과 밀레 가문이 번갈아 가며 4대째 가족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기술 부문의 밀레 가문이 51%, 경영 부문의 친칸 가문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마르쿠스 회장은 창업주 칼 밀레의 4대손이다.
두 가문이 다툼 없이 126년이나 공동 경영이라는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으로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력 정신을 꼽는다.
한쪽 집안이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기술 부문과 경영 부문의 대표를 번갈아 맡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르쿠스 회장은 “현재 80명 이상의 모든 주주가 두 창업자 가문 중 한 쪽의 직계 후손”이라고 설명했다.
126년의 기간 동안 밀레는 독일을 넘어 해외로도 사업을 꾸준히 확장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50여개의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각 지역 파트너들을 통해 100여개 나라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밀레는 전 세계 고객들의 피드백을 제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밥그릇이나 국그릇처럼 오목한 접시를 사용하는 한국 식문화를 고려해 밀레는 식기세척기에 ‘아시안 바스켓’을 설계해 추가했다. 덕분에 오목한 식기도 깨끗하게 세척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밀레 본사의 개발팀이 직접 한국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성한 대표적인 기술 개발 성과로 꼽힌다.
“韓 주택시장 침체에 어려워…맞춤형 가전이 대안”
밀레가 국내 고급 주거시설에 가전 제품을 대거 공급하며 성장해온 만큼 주택시장의 경기는 밀레의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 대표는 “한국의 주택시장이 좋지 않아 올해나 내년까지는 당분간 가전 시장이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맞춘 커스터마이징 제품과 나만의 특징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제품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면 가전 시장도 점차 회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르쿠스 회장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0년간 한국법인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며 “단기적으로는 최상의 환경은 아니지만 전체 경향을 보면 한국은 계속 우상향을 해왔기 때문에 (본사에서도) 한국 내 마케팅과 영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매출 성장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의 질적인 성장도 중요하다”며 “제품 개발과 브랜드 인지도, 구성원 및 고객에 대한 투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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