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3만L로 시작…2032년 138.5만L 달성
명실상부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로
존림 대표 취임 후 매출 수직 상승…영업익 2조 시대
CDO·ADC 포트폴리오 다변화…사업보국 실현
[헤럴드경제(인천)=최은지 기자] 인천대교를 건너 송도국제도시로 진입하면, 과거 바다였던 매립지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강철 요새’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옅은 회색빛의 1~3공장이 단단한 기초처럼 서 있다면, 4공장은 수만 개의 푸른색 유리 조각이 모자이크처럼 빛나며 K-바이오의 심장으로서의 위용을 뽐낸다.
송도바이오대로를 따라 늘어선 이 공장들은 저마다 다른 색과 질감의 외벽을 두르고 있지만, 그 안을 흐르는 DNA는 하나다. 바로 전 세계가 경탄하는 ‘삼성 스피드’다. 건물 높이가 최고 53m(4공장 기준)에 달하는 거대한 공장 내부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바이오리액터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전 세계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거대한 심장처럼 24시간 박동하는 78만5000L의 신화는 이곳에서 매일 현실이 된다.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이건희의 선구안
2010년 이건희 선대 회장의 “삼성의 주력 상품이 10년 이내에 따라잡힐 수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선언에 5대 신수종 사업이 결정됐고, 마침내 삼성은 바이오산업에 뛰어들었다. 결정은 신중했고, 실행은 빨랐다. 2011년 4월, 갯벌뿐이었던 송도에 삼성의 깃발이 꽂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설립 한 달 만에 제1공장(3만L) 착공에 들어갔고, 1년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완공했다.
하지만 첫 수주라는 과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은 대형 생산 거점과 첨단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무엇보다 안전성과 신뢰도가 중요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수주 이력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13년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로부터 첫 수주를 따내며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당시 삼성이 왜 신약 개발이 아닌, 의약품 위탁생산만 하느냐는 업계의 의구심이 있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산업은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과 높은 기술적 장벽, 엄격한 규제 준수, 규모의 경제가 집약돼 있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소수의 세계적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빠른 속도로 CDMO 시장에 안착했다. 창립 이래 누적 수주 총액은 212억달러(약 28조원)를 넘어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바이오 초격차’를 향한 선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한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2023년 글로벌 빅파마 CEO들과 연쇄 회동을 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직접 힘을 실었다. 2022년 4공장 준공식에 참석했고, 2024년과 2025년에도 잇따라 송도 캠퍼스를 직접 찾아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5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경쟁사로, 국내 기업에는 벤치마킹할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속도가 곧 생명”…경쟁사 압도하는 ‘삼성 스피드’
삼성바이오로직스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속도’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에서 공장 건설 기간은 경쟁력과 직결된다. 공장이 빨리 완공될수록 고객사의 약물을 조기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서 쌓은 삼성만의 노하우를 바이오 공장에 이식했다. 대표적인 것이 ‘병렬 공법(Parallel Construction)’이다. 일반적인 경쟁사들이 설계가 끝난 후 발주하고, 건설이 완료된 후 검증(Validation)하는 ‘단계적 공법’을 택할 때, 삼성은 이 모든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다.
5공장은 1~4공장 건설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집대성해 설계했다. 미리 제작한 건축물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공법 등을 적용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 24개월 만에 완공에 성공했다. 이는 동일 규모의 3공장과 비교해 공사 기간을 11개월이나 앞당긴 기록으로, 전 세계 바이오 제조 시설 중 전무후무한 속도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은 실제 경영 지표로 나타났다. 글로벌 업계 평균 공장 1개 건설 기간이 4년이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약 2년 만에 공사를 마무리한다. 이 ‘삼성 스피드’ 덕분에 공기는 40% 이상 절감됐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저는 제약 업계에서 일해왔지만, 24개월 만에 시설을 건설하고 가동할 수 있는 조직은 본 적이 없다”며 “이는 우리의 거대한 핵심 역량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밀어붙일 레버리지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78만5000L의 위엄…‘세계 최대’ 타이틀을 넘어
지난 2025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제2바이오캠퍼스의 시작을 알리는 5공장(18만L)이 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로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송도 내 생산능력은 78만5000L에 달하게 됐다. 이는 전 세계 CDMO 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이 아니다. 축적된 운영 노하우는 배치(Batch, 1회 생산 단위) 성공률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26년 2월 말 기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 등 40여개국 글로벌 규제기관으로부터 434건에 달하는 제조품질승인을 획득한 실적은 삼성이 만든 약이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될 수 있는 ‘골드 스탠다드’임을 증명한다. 2032년까지 총 7조5000억원을 투자해 8공장까지 완공하면 총 생산능력은 132만5000L라는 전무후무한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삼성의 시선은 이제 그 너머를 향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인천 연수구 송도 11공구 내 첨단산업클러스터 용지(18만7427㎡)에 대한 매매계약을 2487억원에 체결했다. 이곳에는 삼성의 야심작인 ‘제3바이오캠퍼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제3캠퍼스는 단순한 공장 증설을 넘어 모달리티(Modality) 다변화의 전초기지가 된다. 기존 항체 중심 사업에서 나아가 항체 백신, 펩타이드,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등 수요가 급증하는 차세대 분야의 연구 및 생산 시설이 건립된다. 특히 기존 제1·2캠퍼스와 인접해 공정, 품질, 기술 기능을 연계 운영함으로써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고객 프로젝트의 리드타임을 단축한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모든 생산 역량을 국내 송도에 구축해 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영토는 이제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2025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Rockville) 소재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6만L)을 2억8000만달러(약 4136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시장인 미국 내 첫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올해 1분기(3월) 내로 인수 절차가 최종 완료되면, 삼성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밀집한 미국 현지에서 고객사와 더욱 긴밀하고 신속하게 소통하며 수주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전망이다.
존림 대표 취임 후 ‘수직 상승’…영업익 2조 시대 개막
존림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2020년 말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수직 상승’ 중이다. 로슈, 제넨텍 등 글로벌 빅파마에서 기술 운영, 제품 개발 및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쳐 CFO직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해 온 그는 바이오 산업의 생리와 재무적 통찰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2020년 12월 취임 이후 그는 ‘초격차’를 강조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양적·질적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2025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간 매출 4조5570억원, 영업이익 2조692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2조 시대’를 열었다. 존림 대표 취임 당시인 2020년(매출 1조1648억원, 영업이익 2928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은 약 4배, 영업이익은 무려 7배 가깝게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인적 분할을 통해 ‘순수(Pure-play) CDMO’ 체제로 전환하며 이해상충 우려를 원천 차단한 전략적 선택이 글로벌 고객사들의 전폭적인 신뢰로 이어진 결과다. 현재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7곳을 파트너사로 확보했다.
‘공장’에서 ‘솔루션 파트너’로…ADC와 오가노이드의 도전
단순히 ‘공장’을 돌리는 단계를 넘어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솔루션 파트너’로의 진화도 눈부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과 동시에 위탁생산(CMO) 사업에 진출한지 7년 만인 2018년 위탁생산(CDO) 사업 출범을 선언했다. 자체 세포주 ‘에스초이스(S-CHOice®)’를 비롯해 현재까지 총 9개의 CDO 기술 플랫폼이 출시됐다. 지난 8년간 누적 164건(ADC 5건 포함)의 수주 계약을 체결, 49건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트랙 레코드를 쌓아오고 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고객사와 협업해 위탁생산(CMO)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조기 록인(Lock-in)’ 전략이 시장에 완전히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차세대 먹거리’ 선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3월 완공된 ADC(항체-약물 접합체) 전용 생산시설이 대표적이다. ‘유도미사일 항암제’라 불리는 ADC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500L 규모의 GMP 생산 설비를 갖췄다. 여기에 2025년 6월 론칭한 ‘삼성 오가노이드(Samsung Organoids)’ 서비스로 위탁연구(CRO)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사업보국’ 실현…동아시아 최초 글로벌 백신 거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업적 성공을 넘어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감염병혁신연합(CEPI)과 ‘백신 제조시설 네트워크(VMFN)’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동아시아 기업 최초로 글로벌 백신 생산 거점에 등극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우선 생산기업’으로 지정되어 팬데믹 시 최대 5000만회 투여량의 백신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국내 생산 물량에 한해 한국에 우선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사시 해외 수급에만 의존하던 한계를 넘어 실질적인 ‘백신 보건망’을 우리 손으로 구축하게 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국 왕실 주도의 ‘지속가능한 시장 이니셔티브(SMI)’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에 매진하고 있다.
지역 생태계 성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인천 기업 최초로 250억원 규모의 산업육성기금을 자체 조성해 향후 3년간 지역 바이오 연구자와 스타트업의 연구 및 인프라를 지원할 계획이다. 상생의 허브가 될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C랩 아웃사이드(C-Lab Outside)’는 2027년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곳을 통해 유망 바이오텍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차세대 모달리티 역량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것은 단기적인 게임이 아니다”
송도 캠퍼스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거대한 배양기 안에서 세포들이 자라나는 동안, 수천 명의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으로 보내질 약물의 품질을 검수한다. 과거 반도체 신화를 일궈냈던 삼성의 DNA가 바이오에서도 고스란히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단순한 위탁 생산 공장을 넘어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글로벌 바이오 솔루션 허브’. 2011년 설립 당시의 무모해 보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도전은 이제 138만5000L라는 압도적 생산력을 향한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존림 대표는 “우리는 단기적인 성장에만 만족하지 않는다”며 “회사의 미래를 위해 중장기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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