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AS=이유정 기자] “제 직업요? 설명하기 복잡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영화 ‘프란시스 하’(2012)의 그레타 거윅을 잊을 수 없다. 무용수로 성공해 뉴욕을 접수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지만 현실은 크리스마스 공연에도 오르지 못하는 프란시스. 친구들의 아파트를 전전하며 겅중겅중 거리를 누비는 그녀의 발걸음엔 프란시스 혹은 그레타 거윅의 서투른 열정과 진심이 묻어난다. 의욕은 앞서고, 어영부영 나이는 먹고. 대책 없이 사랑스러운 27살의 그녀를 그만큼 담아낼 배우가 또 있었을까.
그레타 거윅은 ‘프란시스 하’의 공동 각본가이기도 하다. 영화는 인디 영화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거듭나며 그녀 역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매기스 플랜’(2015), ‘우리의 20세기’(2017) 등에서 독보적인 캐릭터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한 그레타 거윅이 이젠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린다. 2018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총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자신의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를 통해서다.
#90살 아카데미, 5번째 여성 감독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스토리의 성장 영화 ‘레이디 버드’는 9개의 작품상 후보 중 유일한 여성 감독 영화다. 올해로 90회를 맞는 아카데미 역사에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감독은 그레타 거윅이 5번째다.
최초의 여성 감독 후보는 1977년 영화 ‘세븐 뷰티즈’의 리나 베르트뮬러. 1994년엔 ‘피아노’의 제인 캠피언, 2004년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후보에 올랐으나 고배를 마셨다.
2010년 ‘허트 로커’의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며 지금껏 유일한 여성 수상자로 남아있다.
만약 그레타 거윅이 감독상을 받는다면 아카데미 사상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된다.
하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의 아카데미가 그레타 거윅에 수상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그레타 거윅은 ‘덩케르크’의 크리스토퍼 놀란,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겟 아웃’의 조던 필, ‘팬텀 스레드’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과 감독상 수상을 다툰다.
유력 후보로는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휩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꼽힌다. 유독 아카데미 감독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처음으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이변을 꾀하고 있다.
#여성 그리고 영화
그럼에도 오스카상에 대한 기대를 접기엔 ‘레이디 버드’의 성과가 눈부시다. 앞서 ‘레이디 버드’는 유수의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고 각종 비평가협회 감독상, 작품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호평을 얻었다.
지난 1월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뮤지컬ㆍ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아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레이디 버드’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99%. 2017년 개봉한 미국 영화 중 ‘겟 아웃’과 더불어 가장 높은 수치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그레타 거윅은 이렇게 소감한다. 그는 “여성에 관한 훌륭한 영화가 있고 어머니와 딸에 관한 훌륭한 영화가 있다”며 “그러나 남성에 관한 영화만큼이나 여성 영화는 많지 않다. 통계적으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저를 화나게 하는 것은 그곳에 있을 자격이 있는 여성들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할 가치가 있다. 매년 여성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그들이 거기에 있지 않는지, 말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4일(한국시간 5일 오전 10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는 오는 4월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
☞㈜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미국의 영화 관련 웹사이트. 사이트 이름은 ‘썩은 토마토’란 뜻으로, 옛날에 공연을 보던 관객들이 연기력이 나쁜 배우에게 토마토를 던졌던 것에서 비롯됐다. 각 평론가의 리뷰가 호평과 악평 중 어디에 가까운 지 판단한 후 ‘Fresh’ 또는 ‘Rotten’으로 분류한다. 각종 기사, 광고 등에서 영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수치로 자리 잡았다. 지나치게 단순화 한 지수라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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