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상대’식 예산정책…신규ㆍ정책사업 재원 시급 판단 허리띠 졸라매…각 부처 일률적으로 10%씩 절감 지난 10년 새 4차례 사용된 카드…부처들 ‘뼈 깎는 고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기획재정부가 2년 만에 나랏돈이 투입되는 재정 사업에 대해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무분별한 재정사업의 후폭풍으로 멀쩡한 기존 사업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기재부는 26일 확정된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서 강력한 재정 개혁을 하겠다고 밝혔다. 각 정부 부처는 오는 5월 31일까지 기재부에 내년 예산을 요구할 때 재량지출(정부가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유동적 지출)을 10% 깎아야 한다. 성과가 미흡하고 매년 집행이 부진한 사업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 얻어진 재원을 신규 정책 예산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의무지출(법령에 근거해 규모가 결정돼 축소가 어려운 경직성 지출) 역시 인구변화 등을 반영해 적정 예산을 요구하는 등 절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고통을 분담한 만큼 각 부처가 증액을 요구한 사업에 대해선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2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카드다. ‘재량지출 10%’ 축소라는 강도 높은 양적 구조조정은 지난 2008년도와 2010년도, 2017년도, 2018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 적용됐다. 지난해에는 “양보다는 질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다. 3년 연속 시행하게 되면 각 부처가 큰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내년의 경우 대규모 재정투입 사업이 줄줄이 새롭게 시작된다. 우선 당장 내년부터 저소득 구직자에게 6개월 동안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한국형 실업부조’가 도입된다. 지원 대상은 128만명으로 추산되며, 산술적으로 매년 64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또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에 약 10년에 걸쳐 총 24조원이 투입된다. 2023년까지 데이터ㆍ인공지능ㆍ수소경제 등 3대 플랫폼 경제에 약 10조원, 핀테크와 드론 등 8대 선도사업에도 3조6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 밖에 수출, 제2벤처붐, 미세먼지 대책 등이 예정돼 있다.

문제는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이 평탄하게 이뤄질 수 있겠는지 여부다. 지난해 기준 재량지출은 212조원으로 전체 예산 가운데 49.4%를 차지한다. 이 안에서도 인건비, 기본경비 등 현실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경비를 제외한 후 나머지 재량지출에서 10% 이상의 감축 성과를 내야 한다. 예산의 속성상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쉽지 않기 때문에 각 부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옥석을 골라내기 어려운 부처들은 없애기 쉬운 사업 또는 반발이 적은 사업, 국정과제와 관련 없는 사업 위주로 예산을 삭감할 우려가 있다.

재정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기재부 입장에선 부처별 지출 감축폭을 차등화시키는 방식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모든 부처가 똑같이 10%씩 일률적으로 줄이도록 했을 것”이라며 “장래적 시각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긴축이 가능한 사업들을 선별하는 대신 쉬운 길을 택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장 성과가 없다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각 사업마다 시간, 예산이 충분했는지 또 지출 방식은 적절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부처가 자율적으로 사업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며 “예년과 달리 부처 증액 요구사업은 ‘가급적 존중’ 하겠다는 표현도 지침에 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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