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커밍아웃 접한 애니·비움씨 인터뷰
“안수집사 수여 앞두고 차별 실감” 털아놔
OECD “14개국 성인 2.7%는 성소수자”
성소수자들 “커밍아웃, 끝나지 않는 과제”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1원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왜 (성소수자는) 약자를 자처할까요? 있는 그대로 사랑받겠다는 선언일 겁니다.”
11일 ‘세계 커밍아웃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성소수자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만난 애니(62·여) 씨와 비움(62·이상 가명) 씨는 커밍아웃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들의 자녀 A씨는 캐나다 소재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6년 전, 친오빠를 통해 자신이 ‘트랜스여성(MTF·Male to Female)’임을 커밍아웃했다. 대학 졸업식을 2개월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A씨는 현지에서 일찍이 주변에 커밍아웃을 마친 뒤였다. 애니씨는 “졸업식을 앞두고 캐나다 방문을 계획해 놓은 상태였다”며 “여성으로 정체화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A씨가) 결심을 했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닷새. 애니씨가 A씨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애니씨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음에도 처음엔 충격, 그 자체였다”며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어 내내 울기만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비움씨 역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때로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통제하려는 집착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사회생활에 있어서 (A씨가)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들의 인식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 트랜스젠더란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이 달라 ‘성별불일치’를 느끼는 이들을 이른다. 이런 성향은 선천적인 것으로, 당사자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의학계의 주된 의견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국제질병분류에서 “성별불일치는 정신장애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애니씨는 “내 인식만 바꾸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자녀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A씨의 커밍아웃 이후 세상을 보는 이들의 시선 역시 변화했다. 서울 소재 한 교회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는 비움씨는 2019년 안수집사 직위 수여를 앞두고 자신이 성소수자 자녀의 부모란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기독교계에서 여전히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비움씨는 “오랜 시간 설득 끝에 교회에서도 결국은 이해를 해줬다”면서도 “성소수자가 얼마나 많은 차별에 직면해있을지 새삼스럽게 인식하는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통상 ‘LGBT(Lesbian·Gay·Bisexual·Transgender,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로 정의되는 성소수자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그리 낯선 존재만은 아니다. 국내 성소수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주요 14개국 성인 중 2.7%, 약 1700만명이 자신이 LGBT라고 커밍아웃했다.
성소수자의 부모들끼리 만든 모임을 찾는 부모들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 만들어진 이 모임에는 현재 160여명의 회원이 있다. 커밍아웃을 접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주변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애니씨는 “우리는 평소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에 자녀를 비교적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부모가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며 “특히 부모에게 거절을 당한다면, 자녀로선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기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 전까지 무수한 갈등을 겪는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B(27) 씨는 커밍아웃을 ‘끝나지 않는 과제’라고 정의했다.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했다는 B씨는 “인생은 새로운 관계의 연속인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커밍아웃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27) 씨 역시 “주변에서 당연히 이성애자일 거라 생각하며 ‘남자친구 있느냐’며 물어오는 순간들이 커밍아웃을 두렵게 만들곤 한다”고 털어놨다. 여성 바이섹슈얼로 자신을 정체화한 D(25)씨는 “나에게 커밍아웃이란 안전지대를 늘려가는 과정”이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된다는, 숨 쉴 틈이 생긴다”고 전했다.
이들은 성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했다. 애니씨는 “성소수자는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주변의 반대부터 취업상 어려움까지 무수한 어려움을 무릅쓰게 되는 만큼,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져도 나는 내 모습을 사랑할 것이라 선언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도 “커밍아웃은 솔직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상대에 대한 믿음에 기반해 매우 복잡한 고민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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