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내용 자체 검사받는 느낌”
인권위 “표현의 자유 침해” 판단
대자보를 둘러싼 대학가 곳곳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대자보를 게시하려는 학생들과, 이에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학교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29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은 학칙에 대자보 게시 전 사전승인 조항을 두고 있거나, 관련 조항이 없더라도 자체적인 사전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가톨릭대 양광모(21)씨는 계열사 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그룹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대자보를 지난달 말 게시했다. 그러나 당일 오전이 채 지나기 전에 철거됐다. 양씨는 “학칙에서 규정하는 A4용지가 아닌 A2용지에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연락을 학교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톨릭대는 현행 학칙에서 대자보 등 홍보물 게시에 앞서 학교 측 승인을 받을 것과 함께 규격을 A4용지 크기로 제한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교내 환경오염 예방’이 취지다.
가톨릭대에선 반발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가톨릭대 학생들은 지난 21일 학칙 개정 등을 요구하는 재학생 2000여명의 서명을 학교에 전달한 데 이어 지난 23일 촛불시위를 열었다. 재학생 이채환(24)씨는 “아직까지 학교에서 뚜렷한 답변을 주진 않았다”며 “대자보 게시에 실패하는 학생들을 보며 부당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재학생 이정은(19)씨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인 지난 10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중앙도서관 벽면에 부착하려다 직원에게 제지를 받았다. 동국대 관계자는 “도서관은 워낙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공간이다보니 업무목적이 아니라면 다른 공간에 게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런 ‘사전승인’ 절차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편 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자보 게시 때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대학교 학칙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정작 일선 대학들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선은 내규가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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