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환 회장의 ‘결정적 순간’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차장급이었던 성세환 BNK금융지주 회장은 가장 큰 유동성 위기를 겪던 할부금융계열사 부은리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원투수로 나선다. 당시 부산은행 경영진은 전략 기획 라인에서 잔뼈가 굵은 성 회장을 비상대책반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임무는 부은리스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부산은행을 매각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다만 경영진은 부은리스를 완전히 청산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 회장은 “부은리스는 리스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든데다 단기 외채를 빌려 고객에게는 장기 리스를 주면서 구조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영진에게 부은리스를 가교 리스인 한국리스여신에 넘기고 55%의 지분을 회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산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 8% 이하로 떨어져 IMF의 구조조정 대상이 될 판이었다.
자신만만했던 그였지만 부은리스 청산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청산으로 일자리를 잃을 노조의 반발이 가장 컸다. 부산 중앙동 우체국 빌딩에 위치한 부은리스 사무실에 들어가려다 노조원들에게 팔다리가 들려 나오길 여러차례 반복했다.
관건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직원들이 동의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은리스의 재무 상태와 미래에 대해 직원 한명 한명을 만나 설득했다. 부은리스가 넘어갈 한국리스여신과 부산은행 자회사에 직접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했다.
그는 원칙만 내세우지 않았다. 성회장은 “사람이 구석에 몰리면 악만 남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대고 당신이 일자리를 잃든 말든 상관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당시 부은리스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둔 사내근로복지기금이란 돈이 있었다. 계정 외 기금이었기 때문에 청산 후에는 국고로 귀속될 돈이었다.
그는 “국고로 가는게 원칙이지만 그게 직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 모른척 할테니 직급에 따라 퇴직금으로 가져가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퇴직 후 생계 걱정에 청산을 결사코 반대하던 노조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도 그 이후부터였다.
결국 부산은행은 부은리스의 자산을 모두 한국리스여신으로 넘겼다. 8000억~9000억원으로 평가된 자산을 모두 현금으로 회수한 채였다. 제일은행, 조흥은행 등 유수의 시중은행이 외국계로 넘어가거나 합병되는 상황에서도 부산은행은 위기를 넘겼고 이제 시중은행 못지 않은 자산 100조 규모의 금융지주사로 거듭났다.
성 회장은 “당시만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줄줄 나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니 부산은행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순간’이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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