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캠퍼스 꿈에 부푼 신입생들 강의 땡땡이에 꽃구경은 옛말 세상이 탈스펙 해도 ‘믿을건 스펙’
“대학에 들어가면 봄에는 벚꽃놀이 가고 공부는 벼락치기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새학기 개강 한달여를 맞는 4월. 대학 캠퍼스는 완연한 봄을 맞이했지만 설레는 청춘들의 행복한 모습은 없다. 사상 최악 취업난과 경쟁 심화 등으로 ‘노는’ 학생들은 현저하게 줄었다. 초중고 기나긴 수험생활을 이겨내고 대학의 낭만에 대한 부푼 꿈을 꾸는 신입생들도 더이상 예외가 아니다.
새내기 대학생 전소희(19ㆍ경희대 경영학과) 씨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언니 오빠들로부터 ‘요즘은 대학 가도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이야길 많이 듣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 가면 훨씬 편해질 것이란 환상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고3 때랑 비교해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동기들과 벚꽃놀이 가는 낭만은 이제 ‘시대착오적’이 돼버렸다. 전 씨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맨큐의 경제학’(유명한 경제학 입문서) 정도는 수업과는 별개로 미리 공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점 관리를 위해 학회에서 미리 공부하고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캠퍼스의 낭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1997년 IMF위기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다. 오래전부터 서서히 나타난 현상이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치열한 경쟁 속 각박함만 남았다.
대학생들이 예전보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측면에서 이같은 분위기가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교육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 학생들은 초중고 내내 학교~학원~집만 반복하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양대 공대 신입생 박정수(20) 씨는 “요즘에는 선배들도 ‘학기초라고해서 막 놀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예전에는 3월까지는 조금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젠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학교 홍정호(20) 씨도 “1학년때부터 학점을 잘 따놔야 어학연수도 갈 수 있고 다른 대외 활동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입생들도 주말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홍 씨는 “공대의 경우는 ABEEK(공학교육 인증제)를 준비하는데, 남들 다 따는 인증을 못따면 취업때 불안해 울며겨자먹기로 한다”며 “TV나 영화에 나오는 낭만적인 대학생활, 다른과 수업도 청강하는 스티브 잡스 같은 대학생활을 하려면 ABEEK는 포기해야한다”고 했다.
정부와 기업에서는 ‘탈스펙’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학생들이 준비할 수 있는 건 스펙 밖에 없다.
건국대 경영학과 1학년 이유정(20ㆍ여) 씨도 학기 초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 씨는 “토익 점수가 있어야 교환학생이나 학내외 각종 활동에 지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학년이라고 해서 결코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씨는 선배들이 조언해준 ‘금융 3종’ 자격증과 컴퓨터 관련 자격증은 물론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인턴 등을 대비해 한국사와 한자 능력시험도 준비할 예정이다. ‘스펙이 없어서 불안하게 있느니 따고 마음 편하게 있고 싶다’고 했다.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한 김세진(23ㆍ건국대 공대 2학년) 씨는 “군대에 갔다오니 누구는 어떤 자격증을 땄고, 누구는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경력을 쌓았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스펙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라 기본 스펙에 최소 인턴까지는 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해마다 학생들을 지켜보는 교수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해 1학년 1학기 수업으로 사회학 개론 수업을 했는데 1학년 60명이 한 학기 동안 단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라며 되물었다. 한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시장이 얼마나 냉혹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싫더라도 스펙쌓기에 집중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몇년 전만 해도 학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조차 미안해서 ‘너희들이 오죽하면 그렇니’라고 해준다”고 했다. 오 연구원은 “사회 구조적으로 소수의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우리 사회가 일자리 창출노력과 동시에 일자리 간 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배두헌ㆍ유오상 기자/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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