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삶의 궤적을 마주하다 보면 때로 타인의 가장 아픈 구석을 들여다보게 된다. 수많은 사건의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갈망’이다. 그 갈망은 삶의 화려한 정점에서뿐만 아니라, 생의 마지막 불꽃이 가물거리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간절하다.
얼마 전, 우리 사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60대 남성 A씨는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려다 자녀의 112 신고로 공항에서 제지됐다. 경찰은 항공기 출발을 지연시키며 A씨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전한 기사에는 다양한 내용의 댓글이 쏟아졌다. ‘다행이다’라는 안도보다는 ‘오죽했으면 그 먼 길을 홀로 가려 했을까’라는 탄식과 ‘국가가 개인의 마지막 선택을 가로막을 권리가 있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4~5월 기준 19세 이상 1021명 중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조인에게 이 문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지만, 병실의 하얀 천장만을 바라보며 기계 장치에 의지해 호흡을 이어가는 임종기 환자에게 이 ‘존엄’은 너무나 멀리 있는 수식어일지도 모른다.
현대 의학은 인류에게 무병장수의 꿈을 선사했지만, 역설적으로 ‘죽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새로운 비극을 낳기도 했다. 회복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직 생물학적 생명만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는, 때로 환자 본인에게는 존엄의 박탈이며 가족들에게는 기나긴 슬픔의 터널이 되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무거운 사건인 ‘죽음’에 대해 그 결정권이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존엄사란 생명을 경시하거나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일궈온 삶의 가치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려도 적지 않다.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죽음을 강요받는 이른바 ‘비자발적 죽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엄격하고도 투명한 법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스위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환자를 내리게 하는 법이 아니라, 그 환자가 한국의 병원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작별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다. 죽음은 삶의 끝맺음이자, 그 자체로 삶의 일부다. 우리가 태어날 때 축복 속에 환영받았듯, 떠날 때 역시 자신의 의지가 존중받는 환경에서 품격 있게 작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를 넘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더 성숙하고 따뜻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스스로 써 내려갈 권리,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자유다. 오늘 법률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의 삶을 동행하는 동반자의 마음으로 ‘존엄사’에 대한 조심스러운, 그러나 확신에 찬 찬성의 목소리를 내어본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
20k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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