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이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질주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출은 877억5000만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 처음 월간 수출 8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석 달 연속 800억달러를 넘어섰고, 일평균 수출액도 사상 처음 40억달러를 웃돌았다. 올해 1~5월 누적 무역수지 흑자는 1019억달러로, 기존 연간 최대 기록인 2017년의 952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도 기대해볼 만하다.
반도체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37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69.4% 급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에 나서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낸드플래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과다. AI 서버용 SSD 수요 확대에 힘입어 컴퓨터 수출도 290% 넘게 늘었다. 반도체 호황이 중동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악재를 거뜬히 넘어 수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동안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으로 인식돼 왔지만 AI 혁명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HBM과 고성능 메모리 확보를 위해 수년치 장기 공급계약에 나서고 있다. 특히 HBM은 고객사 요구에 맞춰 설계·생산되는 만큼 한번 공급망에 진입하면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여기에 AI 에이전트, 피지컬 AI, 자율주행차, 로봇 등 AI 활용 영역이 확산하면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반도체 비중이 42%를 넘어선 만큼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한다. 현재 메모리 수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다. 투자 열기가 식거나 수익성이 기대에 못미칠 경우 반도체 수요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위협이다.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는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간다. 중국산 저가 메모리가 시장에 대거 공급될 경우 호황은 쉽게 꺼질 수 있다.
모처럼 맞은 ‘반도체의 시간’을 산업 전반의 체질개선과 혁신으로 연결해야 한다. HBM과 AI 반도체의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산업 인프라 확충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미래차·배터리·바이오·로봇 등 차세대 성장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수출 기반을 넓히고, 중소·중견기업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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