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은 나도 몰랐던 나의 문화적 취향을 알려주는 코너입니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면 의외로 도움이 되는 문화 상식을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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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링’ [도호]
영화 ‘링’ [도호]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사라진 친구를 찾아 인적 없는 공간에 홀로 들어간 주인공. 이윽고 신경을 자극하는 불편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암흑처럼 텅 빈 여백도 좀처럼 안심할 수 없습니다. 남은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튀어나올 것인가 뿐입니다. 때가 됐음을 직감하고 슬며시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수없이 당했음에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여전히 연약하게 나부끼는 심장 근육을 사수하는 것뿐이죠.

“무서워서 죽을 뻔했다.”

‘공포’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서 만나 더없는 찬사가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비명이 환호가 되고, 숨을 멎게 하는 공포가 무언의 박수를 대신하는 곳. 바로 공포영화의 세계입니다. 공포영화의 정의는 간단합니다. 관객에게 무서움을 느끼게 만들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때로는 소름 돋게, 때로는 끔찍하게, 때로는 심장을 멎을 듯하게 하며, 간혹 말문을 잃을 정도의 충격을 주는 공포는 오랜 시간 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입니다.

사실 공포는 긍정적인 자극은 아닙니다. 공포는 대개 불쾌함을 동반하죠.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두운 골목을 경계하고, 수상한 소리에 몸을 움츠립니다. 공포는 피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귀신이 튀어나오길 기대하고, 살인마가 숨어 있기를 바라며, 자신을 놀라게 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철학자들은 이를 오래전부터 ‘공포의 역설(Paradox of Horror)’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원래는 응당 피해야 할 감정이 어떻게 즐거움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의 시작이기도 하죠.

영화 ‘샤이닝’ [워너브러더스]
영화 ‘샤이닝’ [워너브러더스]

물론 누군가는 “왜 굳이 나서서 정신적 고통을 자처하지?”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공포를 대하는 더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공포영화를 찾는 관객이 있었고, 이에 공포영화는 늘 존재해 왔다는 점입니다. 잘 만든 공포영화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동시에 감탄하게 만들고, 결국 즐거움까지 이끌어내는 것도 사실이죠. 이번 ‘취향의 발견’은 바로 이 묘하게 어긋나는 역설에서 출발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일까요. 코미디가 웃음을, 멜로가 설렘을 준다면 공포라는 장르는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요.

여고괴담과 곡성, 그리고 곤지암

올해 한국 영화계는 상반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두 번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1680만 관객 달성, 또 하나는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1위에 오른 영화 ‘살목지’의 기록입니다.

특히 저수지 괴담을 모티브로 한 공포영화 ‘살목지’는 최종 스코어 323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존 챔피언이었던 ‘장화, 홍련’의 기록을 20여년 만에 넘어섰습니다. ‘살목지’의 흥행은 단순한 흥행 성과를 넘어, 공포영화가 더 이상 마니아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살목지’ [쇼박스 제공]
영화 ‘살목지’ [쇼박스 제공]

극장가에서 공포 장르가 보여주는 존재감은 2026년 6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군체’가 500만 고지를 바라보고 있고, 지난달 말 개봉한 A24 제작 공포영화 ‘백룸’은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배우 이름만으로 기대감을 형성하는 김재중 주연의 ‘신사: 악귀의 속삭임’, 신민아 주연의 ‘눈동자’ 역시 여름 성수기를 겨냥해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공포의 계절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죠.

많은 영화가 그렇듯 현대 공포영화의 역사는 곧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930년 괴물의 시대를 열었던 ‘드라큘라’(1931), ‘프랑켄슈타인’(1931) 등이 성공하며 공포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것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를 비롯해 ‘엑소시스트’(1973), ‘스크림’(1996) 등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호러의 시대를 열어냈죠.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일본 공포영화가 ‘J-호러’라는 독자적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그 중심에는 ‘링’(1998)이 있었죠. ‘사다코’가 세계 공포영화사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던 때, 곧바로 ‘토시오’라는 캐릭터가 그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바로 ‘주온’(2002)의 성공이었죠.

영화 ‘여고괴담’
영화 ‘여고괴담’

‘링’의 등장은 정확히 한국 공포영화 르네상스의 출발점과도 겹칩니다. ‘월하의 공동묘지’(1961) 이후 납량특집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공포영화계에 ‘여고괴담’(1998)이 등장한 것이죠. ‘학교 괴담’이라는 미개척지를 연 여고괴담의 대성공은 ‘호러’의 입지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공포영화가 여름의 대표 상품이 된 것도 이때입니다.

이후 10년 동안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한국 공포영화 대표작들이 쏟아집니다. ‘폰’(2002), ‘장화, 홍련’(2003), ‘분홍신’(2005), ‘기담’(2007) 등이죠. 2010년 들어서며 급격히 힘을 잃은 공포영화는 2016년 다시금 전환점을 맞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것인데요. ‘곡성’이 촉발한, 공포영화의 오컬트와 미스터리, 드라마로의 외연 확장은 ‘랑종’(2021)과 ‘파묘’ (2024) 등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파묘’는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쓰며 ‘공포영화 흥행의 한계선’까지 무너트려 버렸습니다.

서사보다는 ‘두려움’ 그 자체에 집중한 체험형 공포의 문을 연 것은 ‘곤지암’(2018)이었습니다. 영화는 유튜브 생중계와 인터넷 방송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공포영화를 ‘실시간 현장 콘텐츠’처럼 소비하게 했죠. 카메라로 저수지 괴담을 쫓아가는 ‘살목지’는 이렇게 ‘곤지암’이 닦아 놓은 길을 더 영리하고 정교하게 확장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너 대체 정체가 뭐니”…호러의 즐거움

영화 ‘장화, 홍련’
영화 ‘장화, 홍련’

공포영화의 진화와 발전을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호러의 제왕’이라 불리는 스티븐 킹은 저서 ‘죽음의 무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트럼프의 존재 자체가 ‘공포’라고 했던 그 분, 맞습니다.)

“공포영화는 쓸데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해치우고 싶어한다.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프릭스’(1932)처럼 우리를 젤리같이 연약한 상태로 몰아넣고, ‘제발 영화야 멈춰다오’라고 혼자서 중얼거리게 하는 힘을 지닌 영화들이 존재한다.”

‘공포’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인 스티븐 킹의 이 말은 공포영화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공포영화는 관객을 놀라게 하고, 움츠러들게 하며,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버리고 말겠다는 위협이자 도전장입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오히려 쾌감을 경험합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영화 이론가 노엘 캐럴이 말한 ‘공포의 역설’이 등장합니다.

캐럴은 공포영화 속 감정이 주로 ‘괴물’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괴물은 악마, 외계인, 공룡, 악령 등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포함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괴물들이 단순히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강한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캐럴은 여기서 ‘왜 사람들이 공포를 찾는가’에 대한 답을 얻습니다. 영화가 상식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것을 제시하고, 관객은 호기심으로 그 정체를 쫓아 결국 발견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는 설명이죠.

영화 ‘싸이코’
영화 ‘싸이코’

실제 많은 영화들이 ‘호기심 자극’과 ‘정체 규명’이라는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왔습니다. 슬래셔 호러(Slasher horror, 살인마가 등장인물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호러물의 일종)의 대표작인 ‘스크림’(1996)에서는 초반부에 살인마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정체와 동기를 알리는 것은 후반부까지 유예됩니다. ‘나이트메어’(1984)에서도 일찍이 ‘프레디’의 존재가 등장하지만, 그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는 과정은 후반부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캐럴의 이론은 ‘공포’를 즐기는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번지 점프나 롤러코스터와 같이 ‘수수께끼’가 없는 공포에도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임상심리학자인 린다 길모어와 마릴린 캠벨은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호러 영화나 게임, 놀이기구와 같은 공포감을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는 시험 결과를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는 공포를 피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에 이끌리는 것 역시 본능의 일부일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도다야마 가즈히사 일본 나고야대학교 정보과학연구과 교수는 책 ‘호러 사피엔스’를 통해 ‘공포는 신체적 반응이다’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공포를 즐기는 이유를 파고듭니다. 공포를 느끼면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면서 교감 신경계가 극도로 활성화되고, 각성 정도가 높아지면서 흥분 상태가 되는데요. 도다야마는 관객들이 공포영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바로 이런 ‘각성’을 얻고자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공포영화는 일상의 무감각을 깨우는 장치라는 것이죠.

영화 ‘스크림’
영화 ‘스크림’

도다야마 교수는 “현대 생활에는 진정한 공포를 느낄 기회가 너무 적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각성 상태가 될 필요가 있다”면서 ‘서스펜스의 거장’ 히치콕의 발언으로 부가 설명을 대신합니다.

“이미 우리는 본능적으로 닭살이 돋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인간에게 유익한 충격을 주는 것이 목표다.” (히치콕)

공포영화를 관람한 후에 느끼는 ‘즐거움’을 악몽에서 깬 후에 느끼는 ‘안도감’과 비슷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가 나쁜 꿈(공포영화)을 꾸기를 희망하면서 극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쁜 꿈이 끝났을 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 훨씬 더 좋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죠. 많은 공포영화가 ‘죽음’이라는 인간의 아주 근원적인 공포와 연결돼있다 점은,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기는 어떠한 힘이 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대해 스티븐 킹은 “공포영화는 죽음을 사랑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는 삶을 사랑한다. 기형을 강조함으로써 건강한 활력에 대해 노래한다”면서 “저주받은 비참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아주 작은 기쁨들을 우리가 재발견하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하기도 했죠.

괴물→현실로 이동…‘좋은 공포’란 무엇일까

영화 ‘겟 아웃’
영화 ‘겟 아웃’

모든 영화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공포영화가 반드시 무섭고 짜릿하며 시원한 경험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공포’라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성립시키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공포영화가 관객에게 힘을 발휘하려면 값비싼 컴퓨터그래픽이나 정교한 분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너머에 있는 어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스티븐 킹은 ‘죽음의 무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좋은 공포는 허구의 사건들을 이용해 우리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진정한 두려움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다. 공포가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말하기 두려워할 만한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계속 짖어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포영화는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인간 내면 깊숙한 불안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론가들은 공포영화가 현실의 공포를 반영한다고 분석합니다. 많은 창작물이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반영하듯, 공포영화 역시 당대 사회가 품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투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공포영화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공포영화는 더 이상 ‘귀신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인종 차별을 공포로 치환한 ‘겟 아웃’(2017), 유전적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공포의 구조로 풀어낸 ‘유전’(2018)처럼 가족 해체, 인종 문제, 공동체 불안 등 사회적 주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공포영화가 단순히 비현실적인 장르가 아니라, 현실의 심리와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장르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외부에서 등장한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라는 인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파묘’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 [쇼박스 제공]

영화 ‘군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역시 “오늘날의 공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개별성이 사라진 사회 구조 자체가 공포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현대 공포영화의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공포영화는 관람 환경에 따라서도 체감되는 공포와 즐거움의 결이 달라집니다.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관람할 경우, 관객은 ‘함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거대한 음향 효과와 어두운 환경 속에서 더 강한 공포를 경험하게 되죠.

영화 ‘곤지암’
영화 ‘곤지암’

반면 혼자 방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공포영화를 볼 경우 상황은 정반대가 됩니다. 시각적·청각적 자극은 극장에 비해 약할 수 있지만, 오히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공포의 여운이 더 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아무도 없는 베란다 창문을 무심코 힐끗 바라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극장에서 함께 소리를 지르며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캄캄한 방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혼자 보는 것이 진정한 감상법일까요. 공포영화와 관람 환경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48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바탕으로 한 ‘공포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수용자 반응의 차이 연구’(풍원·나은경, 2021)에 따르면, 공포영화 관람자는 ‘혼자 보는 것’과 ‘함께 보는 것’ 중 혼자 관람할 때 더 큰 즐거움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괴로움은 혼자일 때와 여럿이 함께일 때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공포영화 관람자는 집에서 공포영화를 볼 때가 집이 아닌 장소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용 매체와 극장 스크린 같은 공동 매체를 비교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는데요. 많은 응답자는 개인용 매체로 관람할 때의 즐거움이 공동 매체보다 훨씬 높다고 답했습니다. 동시에 개인용 매체에서 느끼는 괴로움도 공동 매체보다 더 크다고 답했죠.

영화 ‘백룸’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백룸’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논문은 “공포영화를 보며 느끼는 무서움은 긍정적인 즐거움과도 정적인 연관이 있고, 부정적인 괴로움과도 정적인 연관성을 보인다”며 “개인용 매체를 통해 공포영화를 보는 것 역시 공포영화의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와 유의미한 정적 상관성을 나타냈다”고 설명합니다.

정리하자면, 방 안에서 혼자 헤드폰을 끼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공포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공포라는 영화적 경험을 가장 강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참고 문헌

스티븐 킹, ‘죽음의 무도’, 황금가지, 2010

도다야마 가즈히사, ‘호러 사피엔스’, 단추, 2021

풍원·나은경, ‘공포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수용자 반응의 차이 연구’, ‘언론과학연구’ 제21권 2호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