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그린피스 제공]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그린피스 제공]

12일 유럽연합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27개 회원국에서 시행된다. 회원국은 2018년 대비 1인당 포장폐기물을 2030년 5%, 2040년 15% 줄여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도 2032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25% 감축을 못 박았다. 문법은 같다. 기준 연도를 못 박고, 그해보다 줄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반대로 간다. 지난 4월 탈플라스틱 추진계획은 2030년 목표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신재 플라스틱 30% 감량’으로 잡았고, 7월 공청회에 오른 제5차 국가환경종합계획 수정계획안이 이를 핵심 지표로 반영했다. 연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2040년까지 이어질 국가 지표가 된다.

BAU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 때의 전망치다. 손을 놓고 있으면 플라스틱 폐기물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교 대상 자체가 늘어난 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 해보다 총량이 늘어도 전망보다 덜 늘면 ‘감축’이 성립한다. 이 셈법을 알고 정부 목표를 다시 들여다보면 2030년 정부 목표는 2024년보다 15%가량 많아진다. 감축 목표라는 이름을 달고 증가 경로를 그린 셈이다.

우리 정부가 늘 전망치를 잣대로 삼았던 것도 아니다. 2022년 10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전 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의 핵심 목표는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2021년 대비 20% 감축하는 것이었다. 4년 만의 퇴보다.

전망치 목표가 왜 문제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한국 정부가 2015년 파리협정에 낸 온실가스 목표는 ‘전망치 대비 37%’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고 전망을 고칠 때마다 목표가 흔들려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9년 기준연도 방식으로 바꾸고, 탄소중립기본법에 ‘2018년 대비 40%’를 못 박았다. 온실가스가 버린 잣대를 폐기물이 이제 와서 집어 드는 것이다.

제5차 국가환경종합계획 수정계획안 안에서도 전망치를 쓴 지표는 폐플라스틱 감량률 하나뿐이다. 온실가스도 초미세먼지도 모두 기준연도 대비로 목표를 잡는다. 제4차 국가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K-SDGs)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목표를 2018년 122㎏에서 2030년 110㎏으로 명시했다.

상위법(지속가능발전기본법)은 모든 행정계획이 K-SDGs와 어긋나지 않도록 규정한다.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 역시 폐기물 발생 감량률을 기준연도 대비로 정한다. 플라스틱 목표만 상위 법과도, 다른 지표와도 동떨어진 채 홀로 대열 밖에 서 있다.

후퇴는 문서에서 멈추지 않는다. 국가가 물러선 만큼 현장도 물러선다. 연내 수립될 순환경제 기본계획이 이 지표를 받으면 근거법과 어긋난 목표로 10년이 굴러간다. 그다음은 지자체다. 서울은 2021년 하루 2753t이던 폐플라스틱을 2026년 2478t으로, 제주는 2020년 배출량을 204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국가계획이 BAU로 돌아서면 지자체가 엄격한 기준을 고집할 명분도 사라진다.

아직 시간이 있다. 수정계획안은 심의를 거쳐 12월 국무회의에서 확정된다. 새 규제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지표 기준을 원래 계획과 법이 정한 ‘기준연도 대비 절대 감축’ 방식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목표는 정책의 나침반이자 현장과의 약속이다.

실질적 감축 부담을 덜어낸 느슨한 잣대로는 현장에 어떤 긴장감도, 이행의 동력도 만들어낼 수 없다. EU가 2018년이라는 명확한 기준점을 찍고 흔들림 없이 PPWR을 시작했듯, 진짜 감축은 가짜 잣대에 기대지 않는 명확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


w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