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 바이백 재원은 단기채…스테이블코인 키워 새 국채 수요처 확보

‘지니어스법’으로 초단기 국채 담보 의무화…베선트 “시장 3.7조달러 성장”

은행 돈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국채 수요 10배↑…“효과 내려면 시간 걸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신학기(Back-to-School) 행사에서 교육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신학기(Back-to-School) 행사에서 교육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상화폐 밀어주기’ 뒤에는 미국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키워 단기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사줄 새로운 ‘큰손’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 국채 금리를 끌어내려 정부의 이자 부담까지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가상화폐 규제 완화와 미 재무부의 장기 국채 재매입(바이백) 확대 정책은 국채 수요를 늘려 차입 비용을 낮춘다는 점에서 맞물려 있다.

재무부는 단기 국채 발행을 늘리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급등한 장기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이를 ‘재무부 트위스트(Treasury Twist)’라고 불렀다. 과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해 장기채를 사들이고 단기채를 활용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재무부 차원에서 활용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단기 국채 발행을 대폭 늘리려면 이를 꾸준히 사줄 투자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가상자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약 3000억달러 규모인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앞으로 수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경우 미국 단기 국채의 새로운 대형 수요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해 6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30년 말까지 3조7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소개하면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활성화는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촉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새로운 수요는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추고 국가 부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재정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국채 수요처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의 핵심 연결고리는 지난해 제정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다.

지니어스법에 따라 미국에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현금이나 만기 93일 이하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을 준비자산으로 확보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모가 커질수록 단기 국채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를 백악관으로 초청하며 의회 통과를 압박한 ‘클래리티법(CLARITY Act)’ 역시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에서는 은행에 머물던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겨갈 경우 국채 수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산하 허친스 재정통화정책센터에 따르면 은행은 자산 1달러당 평균 8센트가량을 단기 국채로 보유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1달러당 약 80센트를 국채에 투자한다. 같은 돈이라도 은행 예금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단기 국채에 투입되는 자금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씨티그룹 산하 연구소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30년까지 4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 공급량의 약 4분의 1을 흡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무부 역시 이런 효과에 주목해왔다. 민간 은행가와 투자자로 구성된 재무부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증가가 단기 국채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스테이블코인 확대→단기 국채 수요 증가→단기채 발행 여력 확대→장기채 바이백→장기금리 안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가상화폐 정책과 국채 정책이 별개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추려는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도 정책 기대에 크게 움직이고 있다.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장중 7만9987달러까지 오르며 8만달러에 육박했다. 일주일 전보다 20% 이상 급등했다.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 인터넷그룹과 코인베이스 주가도 한 주 사이 20% 넘게 상승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이 당장 미국의 국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전망에는 신중론도 나온다. 가상자산 데이터업체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최근 정체돼 지난해 10월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유입되는 국채 수요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도 변수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재무부가 국채 만기 구조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려면 스테이블코인에서 발생하는 국채 수요의 변동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SJ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미국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을 실질적으로 낮출 정도로 성장하기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