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업 도입률 17.5%로 저조 삭감 임금 신규채용 연계 안돼 정년근로자 박탈감 조성 문제도
#.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김 전무는 요즘 심경이 복잡하다. 올해 만 55세인 김 전무는 회사가 수년전 도입한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이 됐다. 지난해까지 받던 연봉의 80%로 급여가 삭감된 김 전무는 ‘정년까지 회사에 남는 게 어딘가’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억울하다. 지난해나 올해나 김 전무의 업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회사를 위해 기여하는 부분도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나이 한살이 늘어난 것 뿐인데, 반강제적으로 급여를 삭감당하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줄어든 임금을 청년들의 일자리 확대를 쓴다고 하는데 반대할 일은 없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신규채용을 늘리지 않았다. 삭감당한 김 전무의 급여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임금피크제’가 헛돌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일부 금융권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임금피크제가 당초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년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해 고용을 보장하면서 신규 채용의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선순환의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어서다.
신규채용이 이어지지 않으며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감내해야하는 정년 근로자들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일자리 확대도 마뜩찮은 판에 본인들의 희생이 청년 실업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반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인지 민간기업 전반에 임금피크제 도입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지난해 8월 기준 고용노동부가 밝힌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을 살펴보면 30대 대기업 계열사 378곳 중 도입이 완료된 곳은 310곳으로 도입률 82%를 기록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며 도입률이 올라간 영향이 크다.
하지만, 시각을 넓혀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난연말 고용부가 전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에 따르면 시행중인 곳은 17.5%로 뚝 떨어진다. 정년근로자의 임금 감액이 신규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입증되면서 임금피크제가 회사의 비용절감으로 악용된다는 부정적 인식이 커진 영향으로 보인다.
이같은 수치를 근거로 임금피크제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고용시장에서 임금피크제가 실효성 논란을 빚으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정년근로자들의 급여를 깎아 신규채용을 늘리라고 하는데, 근본적으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임금피크제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건 업무 영역이나 난이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나이만 되면 무조건 임금을 깎는 일방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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