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이병철 지음, 걷는사람)=몇 해전 석사 출신 미술전공자가 청소부로 일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논란은 일에 귀천이 있느냐로 쏠렸다. 이젠 박사 출신 강사가 배달 일을 하는 시대다. 시인, 문학평론가이자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병철 씨는 생계가 막막해 밤낮없이 스쿠터를 몰고 거리를 누빈다. 한국연구재단 박사후 국내연수가 끝나자 월 수입은 강의 다섯 개, 신문 잡지 연재 등을 다해 월 200만원이 채 안됐다. 당근마켓에서 스쿠터를 사 라이더 부업을 시작했다. 속이 탄 엄마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할 일이 그것 밖에 없냐고 물었다.오전11시부터 오후11시까지 12시간 뛰어 2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이러다 골병 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좋다는 시인은 겨울엔 꽤 힘들겠지만 이 단순한 노동이 좋다고 말한다. 글로 돈을 버는 것은 왠지 사기 같아 죄책감이 든다는 그다. 배달은 처음은 아니다. 실업고등학교 2학년 때 시급 1800원 분식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입시 학원에 배달가면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아저씨’라 불렀다. 20년 후 배달시스템은 놀라울 정도로 편해졌다. 노부부가 주문한 칡냉면, 젊은 연인들이 주문한 초밥, 파출소에서 주문한 김치찌개를 배달하면서 그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유쾌하게 읽히지만 서글퍼지는 지점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동물의 직업(마리오 루트비히 지음, 강영옥 옮김,현암사)=생물학자가 들려주는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동물들의 50가지 이야기. 쓰레기처리와 기아해결사로 각광받고 있는 아메리카등에응에를 비롯, 실을 잣는 조개, 첩보요원 고양이, 지뢰를 찾아내는 쥐, 드론을 사냥하는 독수리 등 동물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동물을 길들여 그 신체적 특성을 이용하는 일은 역사가 길고 흔하다. 높은 야자수 위에 달려 있는 코코넛을 따는 일은 인간에겐 위험하지만 몸이 가볍고 날랜 원숭이들은 능숙하게 이 일을 해낸다. 그 중 개는 오랫동안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보조하는 데 투입돼 왔다. 경비견, 안내견, 폭발물과 마약 혹은 시체나 실종자를 수색하는 데 특수 훈련을 한 개들이 한몫한다. 최근엔 암과 당뇨 등 의료 진단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한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동물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매사냥은 전세계에서 수천년간 이어져온 전통이지만 대부분 사라졌으며, 최근에는 정찰 드론을 제거하기 위해 독수리 훈련을 시작한 곳도 있다. 희귀동물로 만든 옷은 어떤가. 남아메리카의 바쿠냐로 만든 5000달러 짜리 울스웨터, 악어가죽으로 만든 9만 유로 짜리 티셔츠, 필리헤스무당거미의 거미줄로 만든 황금망토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다. 책은 최근의 동물권에 대한 문제인식에는 공감하면서 오랫동안 인간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온 우리가 몰랐던 다양하고 흥미로운 동물들의 특성과 활약상을 들려준다.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사이)=아서 클라인먼 하버드 의대 교수가 30년간 2000명의 환자를 추적해 ‘질병과 개인의 삶 간의 연관성’을 밝힌 책. 저자는 50대 후반에 조발성 알츠하이병에 걸린 아내를 10여 년간 직접 간병한 경험과 저자 자신이 평생 천식을 앓아온 환자로서의 경험, 또 의사로서 오랜 기간 만나온 환자의 임상 경험, 특히 의학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환자들을 보며 문제는 몸이 아니라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삶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 즉 질병의 서사를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환자들의 통증과 신체적 고통의 원인으로 ‘신체화’를 지적한다. 생물의학적 원인이 없는데도 개인적이거나 인간관계에 관련된 ‘심리적 문제’가 신체적 고통이나 내과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적 스트레스, 삶의 문제가 주 원인으로 지목된다. 즉 직장, 가족, 경제적 상황, 인간관계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신체적 증상으로 변형돼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꾀병과 달리 실제로 신체에 문제가 생긴다. 책에는 6년 동안 8번의 수술을 받고 문제 환자로 낙인 찍힌 주부,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하반신 마비가 온 청년, 자기비하와 상사의 무시로 15년간 복통에 시달리는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20여 명의 환자들의 사례와 인터뷰가 실려있다. 저자는 “통증은 소통과 협상을 담당하는 회로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라며,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양질의 돌봄과 치료가 치유를 낳는다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