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자 부도에도 하도급대금 보호 강화
직접지급 합의서에 원청 최종 책임 명시
건설업계선 “보증비용 증가 보완책 필요”
[헤럴드경제=양영경·서정은·윤성현 기자] 오는 11일부터는 발주자가 원사업자(원청)를 거치지 않고 수급사업자(하청)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주기로 합의하더라도 원청은 대금 지급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발주자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대금이 밀리면 원청이 그 미지급분을 대신 책임지고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계약서에 새로 못 박힌다.
수급사업자의 대금 회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원사업자의 비용과 책임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11일 개정 하도급법 시행에 맞춰 건설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에 포함된 ‘표준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합의서’를 개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개정은 하도급법이 바뀌면서 직접지급 합의를 했더라도 원청의 지급보증을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지급보증은 원청이 부도나 파산 등으로 대금을 못 주게 될 경우 건설공제조합이나 서울보증보험 같은 보증기관이 대신 돈을 지급해주는 안전장치다.
그동안은 발주자가 원청 대신 대금을 직접 주기로 합의만 하면 원청의 지급보증 의무가 면제됐다. 그러나 발주자마저 부도나 파산 등으로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하도급업체가 발주자와 보증기관 어느 쪽에서도 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개정법은 직접지급 합의를 지급보증 면제 사유에서 삭제해 소액공사(1000만원 이하)를 제외한 건설 하도급거래에 지급보증을 의무화했다.
이런 법 개정 내용은 직접지급 합의서에도 반영됐다. 개정된 합의서에는 발주자가 직접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청이 미지급 하도급대금에 대한 최종 지급책임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명시된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이 하도급업체의 대금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는 개정법의 취지를 건설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원청의 최종 지급책임을 계약 단계에서 분명히 해 지급보증금 미지급 등 관련 분쟁을 예방하고 하도급대금 보호 수준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건설업계는 하도급업체의 대금 회수 안전성이 높아진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원청의 지급보증 비용과 책임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특히 발주자의 책임 강화와 지급보증 비용의 공사비 반영 등 제도적 보완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하도급업체의 대금 회수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원사업자의 보증 비용과 책임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거래 조건이 까다로워져 영세 하도급업체의 수주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발주자의 책임을 함께 강화하고 지급보증 비용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등 보완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대금 지급에 대한 원청 책임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고용 분야에서 원청의 책임 범위를 넓힌 ‘노란봉투법’과 같은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원청의 공사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청의 책임만 계속 확대되면 업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노란봉투법에 따른 고용 책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 책임에 이어 지급보증 비용 부담까지 더해지면 주택 공급은 물론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참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사실상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방향이다. 직접지급에 합의했더라도 원청이 최종 지급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원청의 책임 범위를 넓히는 조치”라며 “노란봉투법 시행과 함께 업계가 우려했던 책임 확대가 하나씩 현실화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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