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조 미래투자·104조 여유자금으로 운용

국채 발행 12.5조 줄여 채권시장 충격 완화

국세감면도 첫 100조원대…대기업 몫 절반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반도체 호황으로 나라 곳간에 이례적인 ‘세수 풍년’이 찾아오면서 정부가 162조3000억원을 별도 ‘미래대응기금’으로 분리해 운용한다.

최근 10년간의 증가 추세를 웃도는 내국세를 재원으로 일부는 미래 투자에 쓰고 상당 부분은 향후 세수 감소 등에 대비한 여유자금으로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1일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발표한 ‘2027년 예산안’에 따르면 미래대응기금의 내년 수입 규모는 162조3000억원이다.

정부는 2025년 내국세 결산액에 최근 10년간 내국세 연평균 증가율 6.2%를 적용해 추세치를 산출한 뒤 이를 웃도는 내국세를 기금에 적립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산식 개편으로 확보되는 재원 가운데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밑도는 부분은 교육·인재계정에 별도로 넣는다.

미래대응기금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사업계정과 총괄계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4대 분야 사업에 투입한다.

청년계정에는 청년첫취업지원과 창업사업화, 보편형 공공임대주택, 청년미래적금, 혼인·출산·양육 3종 패키지 등을 담았다. 성장동력계정에는 프론티어급 인공지능(AI) 개발과 ‘모두의 AI’, 자율주행 실증도시·차세대 발사체 등 전략기술 사업을 비롯해 공급망안정화 지분투자와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전력·용수 인프라 지원 등을 편성했다.

지방계정의 주요 사업으로는 지방미래성장지원금과 전남·광주 행정통합 지원, 지방 5성급 호텔 건립 지원 등이 있다. 교육·인재계정에는 지방국립대 전액장학금과 인턴학기제, 미래인재성장자금 등 신규 사업을 비롯해 이공계 장학금과 AI중심대학 지원 등이 포함됐다.

총괄계정 가운데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사용한다. 전체 기금 가운데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총괄계정에 96조9000억원, 지방계정에 5조원, 교육·인재계정에 2조5000억원을 각각 쌓는다.

정부가 추가 세수의 상당 부분을 당장 쓰지 않는 것은 급격한 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모두 피하기 위해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104조4000억원을 여유자금으로 남기지 않고 일반회계에서 지출할 경우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27%를 넘어선다.

반대로 추가 세수를 국가채무 감축에 대거 활용할 경우 내년 국고채 발행 물량이 221조8000억원에서 100조원대로 급감해 채권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미래대응기금은 대규모 세수를 생산적 지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재정안정화 장치”라고 설명했다.

일반회계에 편입된 세입은 단년도 예산 체계상 장기간 적립해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는 별도 기금에 여유재원을 쌓아 세수 변동에 대응할 계획이다. 연도 중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나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법이 정한 범위에서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신속하게 재정을 보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금의 탄력적인 운용이 정부의 재정 재량을 과도하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수 결손 등에 기금운용계획 변경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만큼 국회의 사전 통제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금에 신규 사업뿐 아니라 기존 계속사업까지 포함한 것을 두고도 미래 투자라는 신설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기획처는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하면 지체 없이 국회에 통보하도록 해 일반 기금보다 사후 통제를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계속사업 편입에 대해서는 신규·계속 여부가 아닌 미래 대응 필요성을 기준으로 사업을 선정했으며 혼인·출산 지원도 저출생·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160조원이 넘는 미래대응기금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세수 급증이 있다. 내년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추가경정예산 415조4000억원보다 168조9000억원(40.7%) 늘어난다. 이 가운데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115조4000억원(113.9%) 급증한다.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소득세는 올해보다 43조2000억원 늘어난 180조원으로 전망됐다. 이 가운데 근로소득세는 임금 상승과 반도체 기업의 특별성과급 확대 등으로 29조2000억원 늘어난 102조4000억원, 배당소득세는 기업 실적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에 힘입어 8조5000억원 증가한 13조2000억원으로 예상됐다. 부가가치세도 민간소비와 수입 증가를 반영해 4조8000억원 늘어난 91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2027년 이후에도 반도체 호조와 경제 성장세 확산에 힘입어 국세 수입이 안정적인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세수 증가가 반도체 경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만큼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할 경우 법인세를 중심으로 세입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세입 증가와 함께 국세감면 규모도 크게 불어난다. 국세감면액은 올해 87조원에서 내년 104조9000억원으로 17조9000억원 늘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다만 국세수입 증가폭이 더 커 국세감면율은 올해 16.3%에서 내년 14.5%로 낮아져 법정한도 16.6%를 밑돈다.

기업 대상 감면액은 49조2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상호출자제한기업인 대기업 몫이 24조6000억원에 달한다. 기업 감면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0.8%에서 내년 49.9%로 19.1%포인트 높아진다. 중소·중견기업을 비롯한 전체 기업이 국세감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40.3%에서 46.9%로 상승한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기업 실적 개선과 투자·연구개발(R&D) 확대가 대기업 감면액 증가를 이끌었다. 대기업 투자·R&D 세액공제는 올해 10조원에서 내년 23조7000억원으로 13조7000억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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