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물리학자 출신 작가 폴초우드리 ‘희망 지능’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 인류에게 필요한건 ‘낙관’

최악을 상상·극복을 긍정하는 ‘합리적 낙관주의’

해빙에 갇힌 탐험선.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123rf]
해빙에 갇힌 탐험선.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123rf]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영국계 아일랜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1915년 1월 제국남극횡단탐험대를 이끌고 남극 대륙으로 향하다 해빙에 9개월 이상 갇혔다. 구명정 세 척에 식량과 장비를 싣고 대원들과 가까스로 탈출한 그들은 엘리펀트섬에 도착했지만, 바깥세상과 연락할 방법도, 누군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지 모른다는 희망도 없었다. 하지만 섀클턴과 대원 전원은 10개월 뒤 무사히 귀가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살아남기 어려운 혹독한 환경에서 그들은 어떻게 무사 귀환할 수 있었을까.

천체물리학자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수밋 폴초우드리는 신간 ‘희망 지능’에서 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낙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섀클턴이 탐험 대원을 뽑을 때 낙관적인 사람들 위주로 뽑았고, 특히 섀클턴과 소수의 대원들이 구조대를 데려오기 위해 사우스조지아섬 포경기지로 향했을 때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가 그만의 쾌활한 낙관주의로 흔들리지 않고 대장을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것. 당시 섀클턴은 “내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자질은 낙관주의”라며 “낙관주의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말했다.

흔히들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주의자들을 두고 “뭘 몰라서 그렇지”, 혹은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라는 식으로 호도한다. 하지만 저자는 “낙관주의가 반드시 순진함의 산물은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는 “상황이 어려워질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며, 심지어 낙관주의가 우리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른 나이에 아내를 잃은 저자도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방 안에 처박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화론과 심리학, 철학, 역사 등 학제적 연구를 통해 낙관주의가 왜 기후위기와 불평등, 경제적 불안이 공존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지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낙관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진화론 및 뇌과학에서 말하는 오류 관리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동을 주저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시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고, 이런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즉 낙관성이 단순한 성격이나 취향이 아니라 본성이 된 것이다. 내면에서 출발한 낙관주의는 바깥 세계도 물질적·사회적·영적으로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심리학자 닐 와이스틴이 럿거스대 학생 130명을 대상으로 취업과 이직, 결혼, 이혼, 병환 등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이 긍정적 사건을 경험할 확률은 평균 이상이고, 부정적 사건을 겪을 확률은 평균 이하라고 믿었다. 현실보다 기대가 더 긍정적인 ‘낙관편향’을 연구한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도 사람들의 80%는 어느 정도 낙관편향을 보이고, 10%는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현실주의자, 나머지 10%는 최악을 예상하는 비관주의자로 추정했다.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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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의 모든 일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10월에도 한낮에 25℃ 이상 올라가는 기후위기에 인간이 설 자리를 점차 빼앗는 AI의 등장 등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나쁜 소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은 전망에는 근거부터 캐묻는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희망 지능’이라고 말한다. 미래를 비관할 이유는 많지만, 그 비관이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까지 꺾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해결책도 알 수 없지만, 결과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 바로 ‘낙관주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위험을 축소하고 불편한 증거를 외면하는 ‘맹목적인 낙관’은 위험하다. 저자는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초기 코로나 대응의 예를 들며 지도자의 맹목적 낙관이 위기 대응을 늦추고 시민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짚는다. 즉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해결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 즉 ‘합리적인 낙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처럼 최악의 경우를 충분히 상상하는 지성과 그럼에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냉철한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로서 ‘합리적 낙관주의’는 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덕목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낙관주의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세계는 모든 문제가 사라진 유토피아가 아니다. 현실의 제약 속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더 나은 세계’다. 이를 위해 위험을 살피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며 타인과 협력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낙관주의는 긍정적인 전망이 맞았음을 증명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기대를 바탕으로 무엇을 바꿔냈는지에 그 가치가 있다. 저자는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 모든 가능한 미래 중 가장 밝은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그 미래를 상상하고, 믿고,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뿐이다”고 말한다.

희망 지능/수밋 폴초우드리 지음·김하현 옮김/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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