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 소속 대형 종투사 해외 자회사에 대출 지원 못해 유상증자로 조달…IB성장 제약 일반 증권사·은행 신용공여 가능 해외진출 종투사와 역차별 논란도

올해 초 국내 증권사 수장들은 한 목소리로 ‘글로벌 사업 강화’를 외치며 새해를 시작했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홍콩 회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의 경쟁’을 강조했고,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역시 “올해를 글로벌 IB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도 새로운 성장을 위한 키워드로 ‘글로벌’을 꼽았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이 경쟁 심화로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증권사들로선 해외 진출이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투자를 대폭 늘리는 등 글로벌 공략에 나섰다.

특히 대규모 자본력과 영업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들은 국내에서의 소모적인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등 생존과 성장을 위한 도전에 한창이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규제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현지 법인들은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이하 종투사)가 계열사에 신용공여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모기업이 자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법인 역시 법에 따라 본사로부터 신용공여를 받을 수 없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미래에셋대우를 비롯해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규제 대상이 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이하 종투사)라는 개념을 국내 자본시장에 처음 도입한 해당 법안은 당초 금융투자산업을 활성화하고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는 대형 IB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5월 제정됐다. 하지만 정작 관련법이 해외법인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제한하고 있어 오히려 글로벌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에서 인수합병이나 투자 등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하지만 모기업의 대출 지원이 막혀 초기 해외 시장 안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 나가서 글로벌 IB로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곳은 결국 종투사”라며 “해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한 법이 정작 종투사의 업무를 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의 해외사업 담당자도 “해당 규제 때문에 현지 법인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자금을 공급하는 방법이 폭넓게 열려있지 않아 초기 해외 사업에 부담이 된다”고 했다.

본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는 해외법인들은 대부분 유상증자로 난관을 돌파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베트남법인과 인도네시아법인에 이어 올해 2월 영업을 개시한 인도법인에 각각 증자를 실시했다.

한국투자증권도 2월 베트남법인에 대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유상증자는 대출에 비해 시간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한 게 단점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증자는 현지 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데다 이후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도 당국과 협의가 필요해 절차적으로 복잡하다”며 “신속한 의사결정 측면에서 대출이 용이한 데, 이것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역차별 논란도 제기된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은 자기자본의 20% 이내에서 자회사 전체에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보험사는 그 비율이 40%까지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증권회사도 해외 자회사에 신용공여가 가능하다”며 “해외 진출에 나서는 종투사에는 역차별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당초 해당 규제가 도입된 것은 기업이 신용공여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 2013년 국회 법안심사 당시 모기업이 해외 자회사에 대한 부당지원 목적으로 신용공여 방법을 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개정안에 해외법인 대출금지가 명문화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IB 활성화를 위해 대형 증권사의 해외 진출을 장려해왔다는 점에서 해당 규제가 애초 정책 의도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는 이러한 의견을 수렴해 지난해 10월 종투사도 일반 증권사와 동일하게 해외법인에 신용공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협회 관계자는 “결국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재 금융당국과 함께 절차적인 부분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