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리바이스를 이끌던 최고경영자 칩 버그가 자기 청바지를 10년 넘게 빨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바지를 파는 회사의 사장이 청바지를 빨지 말라고 한 것이다. 물론 리바이스는 이전부터 청바지는 열 번쯤 입고 한 번 빨면 된다고 권해온 회사이긴 했다. 그땐 그저 별난 마케팅이겠거니 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지금 서구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운동이 됐다.

1년 동안 빨지 않은 데님으로 겨루는 ‘인디고 인비테이셔널’이라는 대회가 있다. 참가자 열 명 중 아홉은 150회에서 200회를 입고서야 처음 물에 넣는다. 울 브랜드들은 같은 옷을 100일 연속 입어보는 챌린지를 연다.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기 옷을 어지간하면 세탁기에 넣지 말라고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처음엔 옷을 좋아하는 이들의 별난 취미였다. 그런데 근래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는 이유가 달라졌다.

옷을 오래 입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국 플리머스대 연구팀이 6㎏짜리 세탁물 한 통을 실험했더니 폴리에스터 의류에서 약 49만 개, 아크릴에서 72만 개의 미세섬유가 빠져나왔다. 면과 섞인 혼방마저 13만 개가 넘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바다로 흘러드는 1차 미세플라스틱의 35%가 합성섬유 세탁에서 나온다고 집계했다. 타이어 마모와 함께 양대 배출원이다. 세탁기는 옷을 씻는 기계인 동시에, 바다로 플라스틱을 내보내는 기계였던 셈이다.

얄궂은 대목은 따로 있다. 같은 연구에서 유연제나 친환경 세제를 넣었을 때 섬유가 오히려 더 많이 빠져나왔다. 옷을 부드럽게 하려던 손길이, 지구를 생각한 선택이 되레 옷을 더 깎아낸 것이다. 게다가 옷 냄새는 옷이 아니라 거기 붙은 박테리아에서 난다. 그래서 통풍과 스팀, 심지어 하룻밤 냉동으로도 꽤 잡힌다. 메리노 울 셔츠가 100일을 버티는 것도 울 자체의 항균성 덕이다. 해외 여행복 브랜드들이 아예 덜 빨아도 되는 옷을 내세워 팔기 시작한 이유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의류학회지에 실린 한국·유럽 소비자 비교 연구를 보면 한국 가정의 81.5%가 면 40도 코스를 쓴다. 에코나 찬물 코스를 고르는 비율은 1.5%에 그친다. 세제 용량 지침을 지키는 사람은 11.2%뿐이고 나머지는 눈대중이다. 유연제를 넣고 애벌빨래와 헹굼을 더하는 습관도 잦았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랬다. 다림질을 뺀 모든 영역에서 유럽 가정이 더 지속 가능했다고. 우리는 유난히 자주, 뜨겁게, 세게 빤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빨지 않고 관리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도 우리라는 사실이다. 의류관리기라는 물건은 2011년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세상에 없던 카테고리였다. 지금은 27개국에서 팔리고 글로벌 누적 판매가 올해 200만 대를 넘었다. 2021년의 두 배이고, 중국 시장에서는 한국 제품이 점유율 1위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빠는 나라가, 빨지 않는 기계를 만들어 세계에 팔고 있는 것이다.

오늘 벗어놓은 옷을 한번 보시라. 정말 더러운가, 아니면 그저 한 번 입었을 뿐인가. 하루쯤 걸어두면 될 것을 습관처럼 세탁기에 넣고 있지는 않은가. 재킷과 니트, 코트와 청바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견딘다. 하루 걸어 바람을 쐬어주는 것만으로도 대개는 충분하다. 물론 속옷과 양말은 예외다. 거기까지 아끼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 부디 오해 마시길.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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