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M 소나타 시리즈’ 리사이틀
부소니 곡 ‘약간 권태기 온 친구’
모차르트 곡은 ‘알수록 새로워’
피아노 ‘소통 매개’로 공감 음악
까만 안경 너머 두 눈이 지긋이 감겼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꿈길을 걷는 것처럼, 건반 위의 손은 노래를 부른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2번 F단조’를 연주할 때였다. 그의 얼굴은 경연의 긴장감을 지웠다. 그저 행복해보였다.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김도현에게 세미파이널 최고 연주 특별상을 줬다. 2021년 2월 금호라이징스타로 선 무대에선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중 3개의 악장’을 연주했다. 그는 스스로 음표가 됐다. 복잡하게 그려진 음표들이 피아니스트의 몸에서 튀어나와 피아노 위로 격렬하게 쏟아져내렸다.
“내가 믿어왔던 것이 몇 년이 지나선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때도 있어요. 해마다 느끼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달라져요. 내일이면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고요.”
그때의 김도현과 지금의 김도현 사이. 지나온 ‘시간의 길이’는 ‘음악의 얼굴’을 바꾼다. 최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김도현은 “내겐 모든 곡이 친구 같다”고 말했다.
“같은 친구여도 처음 만났을 때의 친구와 오래 만났을 때 친구의 느낌은 다르잖아요. 이전엔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김도현은 오는 30일 서울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7회 M클래식축제’의 일환인 ‘M 소나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자로 나선다. 김선욱, 선우예권, 박재홍, 백건우, 김도현, 문지영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리사이틀’이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는 2021년 부소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연주한 첫 곡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따른 환상곡’을 시작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2번 F단조,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중 3개의 악장’,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들려준다. 그에겐 한 곡 한 곡이 “오래 만난 친구”이기도 하고, “새로 사귄 친구”이기도 하다.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엔 여러 요소들이 작용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부소니,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따른 환상곡’)이자, “아는 사람이 드문 곡”이다. 그는 부소니의 곡에 대해 “약간의 권태기가 온 친구”라며 웃었다.
“이 곡은 예전에도 굉장히 행복하게 연습했어요. 지금은 그때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챌린지가 있어요. (웃음) 부소니가 우리나라에선 바흐를 편곡한 사람으로 더 알려져 있고, 직접 작곡한 곡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잖아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이 곡엔 대위법과 바흐 음악의 상징들이 그의 언어로 재해석돼 있어요.”
서로 다른 곡에선 ‘하나의 서사’가 만들어졌다. 아버지를 향한 부소니의 마음이 “심오하고 어두운 분위기 안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을 맺으면, 모차르트가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그에겐 아주 ‘오랜 친구’이면서, 알면 알수록 “새로운 면이 튀어나오는” 친구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부소니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스트라빈스키는 “관객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골랐지만, “볼 때마다 힘든 친구”다. 그만큼 난곡이다. ‘새 친구’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는 “대화하는 듯한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선곡했다. “인간관계나 감정, 유학 중의 여러 일들…. 제 진짜 모습을 아는 지인들은 드라마틱했던 제 삶이 이 곡을 표현하기에 잘 어울릴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여러 이유 뒤엔 흥미로운 ‘연결고리’도 생겼다. 최근 몇 년 사이 김도현은 ‘별자리 마스터’가 될 만큼 이 분야를 집중탐구 중이다. 작곡가의 이름을 대면, 자판기처럼 별자리가 줄줄 나온다. “물병자리인 모차르트, 쌍둥이자리인 슈만과 스트라빈스키”. 그는 “천칭, 물병, 쌍둥이자리는 바람 속성 별자리라 영혼이 떠다닌다”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보니 바람 속성 별자리 작곡가들로 짜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현은 천칭자리다.
“65~70% 가량 E성향”인 ENFP, 천칭자리인 피아니스트 김도현에게 피아노는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하는 소통의 매개이기도 하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피아니스트로의 삶’이 이른 편은 아니다. 배운 적은 없었지만, 피아노엔 일찌감치 손을 댔다. 귀로 들은 동요를 치고 놀던 예사롭지 않던 ‘유딩’(유치원생)이었다. “그때의 전 피아노를 좋아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운동하고 뛰어노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러다 전공을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피아노와 많은 시간을 가지며”, 피아노로 그의 감정들을 표현했다.
“음악을 들을 때 이건 어떤 느낌인지, 저의 감정이나 스토리를 적는 걸 좋아했어요. 예고 시절에 프로코피예프를 칠 땐 ‘새가 지저귀는 느낌’이라고 악보에 적기도 했고요. 그런 표현을 상상하긴 하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면 생각한 것이 표현되지 않더라고요. 경험이 없었으니까요. 그게 제가 왜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알려주는 것 같아요.”
“65~70% 가량 E성향”인 ENFP라는 그에게 피아노는 ‘소통의 매개’다. 내면 안으로 쌓인 무수히 많은 감정을 이야기하고, 머릿속에 그린 상상의 세계를 풀어내 들려준다. 차분한 외모 안에 감춰진 변화무쌍한 모습이기에, 피아노 앞의 김도현은 때때로 완전히 다른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 인생의 전환점은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스승인 세르게이 바바얀과 만나며 찾아왔다. 입시와 콩쿠르에 ‘적합한’ 연주를 해오던 그가 다른 세계로 한 발 더 디딘 때였다.
“제가 원하는 음악을 테크니컬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해 많이 우울했던 때에 바바얀 선생님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알려주셨어요. 멜로디를 연주할 때, 성악가들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피아노에서 숨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설명해주셨어요. ‘노 본스(No Bones)’.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신 거예요. 온 몸에 힘을 다 빼라고, 손에서 뼈가 느껴지면 안된다고요.”
스승의 이야기를 완전히 체화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시간을 떠올린 김도현의 눈엔 행복한 웃음이 가득 찼다. “이 모든 음표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심장에서부터 손끝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상상하며 연주를 해봤어요. 그러면서 그 말을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매일 아침 학교 앞 ‘커피하우스’로 향해 “악보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그만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때로는 “적합하지 않은 해석”도 있었다. 어떤 때엔 “너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스승의 칭찬도 들었다. 스스로는 “머릿속 생각과 해석이 무대에서 다 반영되지 않을 때도 있고, 100% 발휘해도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지 않을 때도 있다”고 돌아본다. 그래서인지 “연습이 잘 될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연습했는지” 적어가며, “슬럼프가 올 때 다시 꺼내 봤다”. “그런데 아무 소용 없더라고요. 그건 내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이고, 지금의 슬럼프는 무언가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이니까요. 그저,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거라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어요.”
그의 음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음악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올라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가고, 악보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도 방향성을 둔다.
김도현은 “예전에 제가 연주한 걸 다시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조금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며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나만의 오르가슴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순간과 감정을 담아내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은 우연찮은 계기였다.
“어쩌다 백건우 선생님과 길을 걷게 된 적이 있어요. 걷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귀엽다’면서 사진을 찍으시더라고요. 전 항상 구도를 생각하고, 아티스틱하게 나온 사진을 담고 싶어했는데 선생님은 아니더라고요. 선생님의 연주나 말씀을 들으며, 자극적인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심지어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전의 저에서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된 계기였어요.”
그의 음악적 방향성은 조금씩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선생님들은 악보를 잘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전 저의 해석과 표현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악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큰 의견이잖아요. 제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나중엔 그것이 맞았다고 깨달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개개인 연주자의 캐릭터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반반이에요. 악보 안에서 자유롭되, 그것을 잘 이해하면서 모두가 공감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려고 해요.”
김도현의 피아노는 호흡이 길다. 콩쿠르에서 수상(2021년 부소니국제피아노콩쿠르 2위, 시카고 국제 음악 콩쿠르 아티스트 부문 1위)하고, 다양한 연주 기회를 얻은 “모든 것이 대학 졸업 후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그에겐 이 긴 과정이 스스로의 음악을 찾는 길 위에 있다. 그는 “이 리사이틀을 마치고 나서도 후회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며 “내일, 내년, 그리고 지금도 계속 알아가고 있고,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했다.
“전 천재도 아니고, 최정상 연주자도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고, 누구나의 곁에 있는 연주자예요. 그저 제가 원하는 음악을 사람들이 알아줬을 때 너무나 기쁘고, 저의 철학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음악을 한 것을 축복이라고 여겨요. 제겐 음악을 하고 있는 이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하다고 느껴져요. 음악을 통해 거대한 업적을 남겨야겠다기 보다는, 그냥 이렇게 하고 싶어요. 소소하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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