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음악교사였고 어머니는 집에서 피아노 2대를 놓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버지가 전남 일대에서 초등학교와 고교의 음악교사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자기 전에 자연스럽게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내가 직업을 인식하기도 전에 천직을 가지게 된 게, 큰 복이다. 부모님께 고맙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작곡을 못하게 했다. 그 시절은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미미했다. 작곡가란 종로의 다방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사람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음악 피가 흐르는 김형석은 아버지 몰래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다. 영화음악을 공부하려고 한양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갱스터 무비의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음악을 만든 엔니오 모리코네에 반했다.

대학에서 4년 선배인 유재하를 만나 대중음악의 멘토로 삼았다. “당시 유재하 선배가 학교에 몇번 와 만난 적이 있다. 서로 깊게 교류한 적은 없지만 항상 머리 속에 각인돼 있다. 유재하의 음악은 팝적이었고 당시 유행하던 마이너 발라드 스타일과 달리 메이저 형태였으며, 오케스트라를 많이 쓰고 언어도 시적일 정도로 단어 선택이 독특했다. 나 뿐만 아니라 신승훈 김동률, 이적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김광석과 작업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김형석은 동물원 형들과 친하게 지냈다. 25년전 김광석에게는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너에게’라는 노래를 주기도 했다.

김형석은 연기자였던 아내와의 사이에 3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머리가 빨리 백발이 됐다. 아이가 집에서 ‘클레멘타인’을 부를 때 가사 중에 ‘늙은 아비’라는 부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파게 된다고 말하며 넉넉하게 웃는다. 주말에는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멍’ 때리며 지낸다.

“무아지경에 빠진다. 음악은 마술이다. 피아 구분이 없다. 음악이라는 아젠다로 하면 무엇이건 풀린다. 소리는 울림이다. 그 진동이 너와 내가 맞았을 때는 마술이 일어난다.”

김형석은 음악이 감동을 주는 건 리얼리티와 디테일이 충족될 때라고 한다. 음악을 만들때 볼륨 0.1 데시밸 올리느냐로 고민을 한다. 이런 게 디테일이다. 가사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있느냐 하는 점은 리얼리티다. 두 개가 충족되면 시너지가 일어난다고 한다.

음악 교육자이기도 한 김형석은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학교 실용음악과와 실용음악 아카데미가 포화상태지만 졸업하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4학년만 되면 많은 학생들이 강사로 나선다. 이들의 투자 시간과 재능을 보상받을 곳을 만들어야 한다. 김형석은 “교수로서 할 말은 없지만, 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중국이 좋은 탈출구다”고 말했다.

김형석은 이를 위해 k-note 차이나를 설치해 중국에서 교육을 할 계획이다. 중국에서 아카데미를 10군데에 설립할 예정이다. 그는 중국 안휘TV, MBC, k-note가 함께 만들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중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씽동야조우’를 보면서 중국과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음악 진열대에 상품이 많이 올라와야 한다. 진열대는 미디어이고, 많아야 하는 건 콘텐츠다. 우리의 마니아가 1만명이라면 중국은 30만명이다. 중국 학교교육의 20%는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문화과목을 공부하도록 해 문화강국이 되려는 정책을 추진한다. 물론 중국에도 K팝 니즈가 있다. 중국은 방송 제작에도 손을 뻗친다. 그러니 K팝에서 더욱 다양한 문화가 나와줘야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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