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보호 공백’ 질타했지만
가해자 격리 법안은 계류 상태
처벌법 목적에 여전히 ‘가정의 회복’ 명시
전문가 “피해자 안전이 우선”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경찰이 최근 잇따른 가정폭력 참극을 계기로 피해자 보호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작 국회는 관련 법안 수십 건을 수년째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이 사건 발생 시 경찰 대응만 질타할 뿐,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가 검찰개혁 등 정쟁에 매몰되면서 국민 생명과 직결된 민생 법안 처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32건으로,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가운데 16건은 법사위 심사 단계에, 나머지 16건은 접수 단계에 머물고 있다.
계류 중인 다수 법안에는 최근 ‘송파 장모 살인’, ‘전주 아내 살인’ 사건이 잇따른 뒤 경찰이 검토 중인 가해자 격리·감시 강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경찰은 가정폭력범이 기존 퇴거·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재발 위험 등을 고려해 유치장 유치를 신청하고, 긴급임시조치 위반을 과태료 대신 형사처벌 하는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을 담은 법안은 이보다 앞서 20·21대 국회에서도 법안으로 추진됐지만, 번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찰의 현장조사를 거부·기피하는 행위 제재를 과태료에서 형사처벌로 높이는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이 지난 3월 본회의를 통과한 게 올해 들어 유일한 입법 성과다.
최근 경찰청 등 국정감사에서는 가해자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가 만료되기 전 위험성을 평가해 대응할 체계를 마련하거나, 반복 신고와 접근금지 위반 이력 등을 면밀하게 살펴 구속영장 신청에 재범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5일 남인순 국회부의장은 관련 법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친밀관계폭력대책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발의했다. 향후 입법 논의에서는 보호 수단 강화와 함께 가정폭력을 다루는 법의 목적과 사건 처리 방식도 원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제1조에서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가정 유지’가 법의 목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현장에서 강한 개입이나, 가해자 처벌을 주저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행한 ‘친밀한 관계 기반 폭력 대응 및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제화 연구’ 보고서도 같은 문제를 짚었다. 보고서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따라 사건 처리 방향이 달라지면서 형사처벌 대신 보호관찰·상담위탁 등의 보호처분을 하는 가정보호사건 절차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위험 상태나 보호 필요성보다 관계 유지 여부가 사건 처리의 핵심 판단 기준이 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중대·상습 가해자에게 실효성 있는 형사책임을 묻고, 피해자에게는 주거·생계·치료·자립 등을 지원하는 원칙을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5년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도 관계성 범죄 표적이 돼 살해당한 피해자가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스마트워치 지급 후 살인·살인미수 사건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지난 12일까지 살인이 17건 집계됐다. 이외 살인미수도 10건 있었다.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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