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훈련에 긍정적 활력”환영 일부선 “여성 성적 대상화” 우려
# 서울 광진구에 사는 30대 A씨는 얼마 전 다른 지역으로 오전 민방위 교육 훈련을 갔다가 뜻밖의 경험을 했다. 훈련 사이 사이 쉬는 시간마다 훈련 관계자가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스크린에 띄워줬던 것. A씨는 “난데없는 영상에 민방위 훈련을 받는 남성들의 눈이 번쩍 띄였다”면서 “훈련 내내 졸던 남성들이 뮤직비디오만 나오면 화면에서 눈을 못 떼더라”고 웃었다.
일부 지자체에서 민방위 교육 훈련에 앞서 여성 밴드 등의 공연을 보여주거나, 쉬는 시간마다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있다. 지루한 민방위 훈련의 활력이 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반면 민방위 훈련의 본질을 흐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직장인 신모(33) 씨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았다가 광진구에 거주하는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 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교육이 이어지는 가운데, 훈련 관계자가 쉬는 시간이 되면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틀어줬다.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시는 2013년부터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참가자들에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광명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공연들을 하지 않느냐”면서 “이를 본따 광명시에서도 민방위 교육 훈련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광명시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은 한 3년차 참가자는 “여성 2인조의 공연에 이어 첫 훈련이 끝나고 과자까지 줘서 ‘민방위 훈련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만 훈련하면 민방위 훈련이 마냥 졸리고 지겹지 않을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명시는 올해 공연을 클래식 위주로 바꿨다. 지난해까진 걸그룹과 여성 밴드 위주로 섭외를 했지만, 이에 대한 호오가 상당부분 엇갈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도 분위기 진작을 위해 여성을 무대에 세우거나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학원생 이모(27ㆍ여)씨는 “현역 군인들이야 여자 볼 일이 없으니 걸그룹을 초청해 위문공연을 여는 게 사기진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민방위 훈련에서까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냐”면서, “여성으로서 여성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매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교육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적잖다. 졸음 방지용으로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줄 게 아니라 민방위 훈련 내용 자체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민방위 훈련을 받았다는 자영업자 김모 씨는 “4시간 내내 파워포인트나 비디오를 보는데 잠이 안 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며, “졸지 말라고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데 괜히 시끄럽기만 하고, 다들 보지도 않는 분위기였다”고 꼬집었다.
박혜림 기자/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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